#1 알바니아 출신 에리사(23)는 한국 유학생이다.

그녀는 A 대학 재학생으로 학비를 벌고자 고국 부모님들이 만든 금속팔찌와 열쇠고리를 1만원에 판다.
그녀는 한국에 온지 1년 가까이 돼 서툴지만 한국말을 알아듣고 대화도 가능했다. 13일 사무실에 온 그녀에게 "미투운동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으니 "모른다"고 대답했다.

"혹 이걸 팔고 다니면 '젠다' 얘기를 안하느냐" 물으니 "젠다가 무엇이냐"고 되묻고는 "물건 몇 개 팔아주고는 데이트 하자고 졸라댄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친구가 학비를 벌고자 시간제 알바를 하는 곳에서도 호프집 주인이 젠다 얘기를 해 결국 한 달만에 그만뒀다고 말했다.

#2 지역농장에서 일하는 한 캄보디아 출신 썸낭(34) 씨는 "뽀뽀해 달라, 어깨 주물러 달라, 가슴이 크다" 등 손을 대거나 놀러가서 자고 싶다는 등 온갖 요구를 해오지만 이들은 당장 불이익을 당할까 봐 거절을 못한다고 했다.

이처럼 최근 한국 사회를 강타한 '미투'바람에도 언어와 제도의 장벽에 가로 막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농장 등에 고용된 이주여성들과 후진국에서 온 여학생들이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지난 2016년 5∼8월 베트남·캄보디아 출신 이주여성 농업노동자 20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대상자의 12.4%가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중 응답자 중 64%는 한국인 고용주나 관리자를 가해자로 지목했다.

이주여성은 이주민이자 여성이라는 이유로 각종 성폭력 피해를 경험하게 되지만 의사소통의 어려움, 미흡한 지역 지원체계 및 예방·구제제도 때문에 많은 이주여성이 지금도 인권을 유린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피해후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던 이유로는 △한국말이 서툴러서(64.4%) △도움 요청할 곳을 몰라서(52.6%) △신고 후 불이익을 당할까 봐(15.8%) △ 가해자가 두려워서(10.5%) △한국에서 추방될까 봐(5.3%) 등으로 조사됐다.

현재 정확한 이들의 성폭력 피해 실태를 알 수 있는 국가통계는 없다. 그러나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운영하는 상담소의 상담통계를 통해 피해자가 겪었을 고통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1년간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와 대구이주여성상담소 2곳에 접수된 성폭력 관련 상담 건수는 456건에 이른다.

특히 응답자 중 64%는 한국인 고용주나 관리자를 가해자로 지목했다. 하지만 이주여성들은 이런 상담시설이 있는지 모르거나 주위 시선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 실제 신고 건수보다는 더 많을 것이라는 게 센터측의 설명이다.

상담센터 관계자는 "요즘 거센 미투운동에도 불구 왜 유독 이주여성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지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가 그동안 이들에게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금새 알 수 있다"며 “이들이 성폭력의 그늘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있도록 관련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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