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용 문화기획팀장·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

인생을 살다보면 늘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한국 학생들의 진로는 대부분 부모, 교사 등 주변인에 의해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기에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전에 수험에, 취업에 등 떠밀리는 것이 예사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제2의 사춘기', '제3의 사춘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충분히 시간을 갖고 자신의 생각을 키우기 보다는 아무 생각 없이 정해진 길만을 달려오다 막상 막다른 길에 부딪히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다.

사람은 궁지에 처하면 변명을 만들어 내기 마련이다. “이게 다 엄마 아빠 때문이야”, “담임이 지도를 잘못 했어” 등 내가 아닌 남의 선택에 대한 탓을 한다. 정작 내가 선택해야 하는 길인데도 말이다. 100세 시대가 도래 했다. 즉, 선택은 오롯이 나의 몫일 경우가 더 많이 남았다는 뜻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타임 리프’(time leapㆍ시간여행)를 통해 천방지축 여고생의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늦잠을 자느라 지각을 하고 성적도 하위권이다. 잦은 실수 때문에 곤란한 상황도 많이 일으키지만 성격만은 활발하다.

주번인 마코토는 반 아이들의 노트를 들고 교무실에 들른다. 칠판에 'Time waits for no one'이라고 적힌 문구를 읽어 본다. 교무실 옆 실험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고, 바닥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찰나 깜짝 놀란 마코토는 뒤로 넘어진다. 환상을 본 듯한 마코토는 실험실 바닥에 누워있는 걸 깨닫는다.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여기며.

하굣길에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을 가던 마코토는 브레이크가 고장나 멈추지 않는다. 기차에 치이기 바로 직전, 마코토에겐 삶을 한 번 더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마코토는 이를 계기로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마코토는 지각을 하지 않고 좋은 시험 점수를 받는다. 마코토는 시간을 돌리는 능력을 거창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지극히 일상에서의 불편함을 제거하는 정도로, 또래의 아이들이 생각할 만한 일에 능력을 쓴다.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더 놀고 싶어 시간을 되돌리기도 하는데, 이때 한 친구가 메론 소다와 콜라 두 개를 주문했다. 몇 번의 시간을 되돌리면서 이 주문은 바뀌게 된다. 메론 소다와 콜라, 그리고 진저에일로. 과거도 새로운 시간이며,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박물관에 근무하는 마코토의 이모는 타임 리프 경험자로, 이렇게 조언한다.

"마코토가 이득을 본 만큼 손해를 보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마코토와 친한 친구인 고스케와 치아키는 매일 셋이서 야구 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치아키가 "마코토, 나랑 사귀지 않을래?" 라며 고백을 하고 치아키는 이 일을 없던 걸로 하기 위해 과거로 몇 번이나 돌아간다. 결국 본인의 안위를 위해 사용한 능력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게 된다.

친구인 유리와 치아키가 연인 사이로 발전하는 걸 지켜보게 되고, 어렵게 말을 꺼낸 치아키의 고백을 없던 것으로 만들어 버린 마코토는 때늦은 후회를 한다.

고스케를 짝사랑하고 있던 후배 여학생의 고민 상담까지 받은 마코토는 두 사람을 이어주기 위해 과거에서 현재로 몇 번이나 오간다. 또 마코토의 기차 사고를 고스케가 당할 위기에 처한다. 치아키가 시간을 멈추고 마코토와 마주한다. 미래로 향하던 발길을 돌려 마코토에게 치아키가 말한다. “미래에서 기다릴게.” 마코토가 대답한다. “응, 갈게. 뛰어갈게.”

마코토의 눈물은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다 어느새 마음이 묵직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과/문과라고 쓰인 칠판 앞에서 “아무래도 좋아”, “도무지 모르겠어”라며 자신이 선택해야 하는 문제를 피해 다녔던 마코토는 마침내 결심한다. 시간을 붙잡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달리던 마코토가 내린 결론이다.

영화는 평범한 여고생을 통해 그 순간에만 할 수 있는 자신의 행동이 야기하는 결과의 무거움을 상기시키며 시간에 대한 책임감을 보여준다. 인간은 한 번 밖에 쓸 수 없는 시간을 통해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미래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말한다.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