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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석전대제는 왜 지내는가윤근오 울진향교 전교
   
▲ 울진향교 윤근오 전교
석전대제란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에 문묘에서 공자를 비롯하여 신위를 모시고 있는 4성10철 경현을 제사지내는 의식으로 중요 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나라 석전대제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전대제의 제의가 제도적으로 확립되어 국가적 대사로 봉행된 것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다. 공기(孔紀) 2541년(1990) 추기 석전부터는 천자국(天子國)의 학교인 벽옹의 위치에서 대제를 봉행하여 독립국가로서의 위상을 세웠다.

현재 각 지방의 향교에서 진행되는 석전대제는 대부분 성균관의 석전대제에서 합악(合樂)이 빠진 규모로 봉행된다. 따라서 대제가 아니라 중사(中祀)이다. 그러므로 석전대제가 아닌 석전제라고 해야 옳다. 그러나 명칭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날 우리가 왜 석전제를 지내야 하는가?’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유학이 곧 국학이었으니 유학자를 숭상하고, 유생(儒生)들이 석전제를 지내는 것이 당연하겠으나 단순히 전통문화라는 틀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오늘날의 석전제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공자께서도 ‘본뜻은 망각하고 형식에만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라’ 하셨다. 형식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나 ‘왜 해야 하는지’ 그 본뜻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옛말에도 남의 제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라는 말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묘에 배향된 인물들은 한 시대에 학문을 크게 이루고, 세상에 두루 영향을 미친 분들이다. 다시 말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정신적 지주가 되는 분들이시다. 때문에 마땅히 숭상하고 그 뜻을 이어 받아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서구문물이 전파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서구 문화에 중심 가치를 두고 달려왔다. 서구문화를 폄하하고 무조건 우리문화가 최고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 것을 먼저, 제대로 알고 서구문화를 수용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것이다.

후손에게 물려줄 것이 서구 문화밖에 없다면 난감한 일이 아닌가! 더 늦기 전에 관심을 갖고, 하나씩 알아가면 어떨까? 오늘 우리 것을 알면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이 된다.

이조실록에 의하면 조선 태조7년(서기 1398년.620년전) 전국에 명하여 향교를 창건함에 따라 경북 울진향교도 지난 1398년 몇 년 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고증되는 문헌이 없어 남아있는 기록으로는 1484년 86년 후에 울진군 월변에 처음 창건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213년 후인 1697년 울진읍 고성리 성저동으로 이건, 다시 175년 후인 1872년에 바로 현 위치로 이건했다.

울진향교는 공자님을 비롯한 안자, 증자, 자사, 맹자 5성위와 송조(중국) 4현(주돈이, 정호, 정이, 주희), 우리나라(해동) 18현 등 모두 27현의 현유 위패를 봉안함으로서 유교발전에 힘쓰고 중등교육기관으로서 유학의 근본사상인 인·의·예·지·신의 인본주위 이념을 배우고 익히면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 사랑과 변화의 교육도장으로서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하고 제향을 받드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양성에 힘을 쏟아오고 있다.

울진향교는 앞으로 인성교육 등 특색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경전교실, 인문학교실, 다도교실, 서예 . 예절교실, 전통문화, 전통혼례 등은 물론 충효, 도배식, 기로연, 성년의 날 관·계례식의 다양한 행사로 원로부터 유치원생에 이르기까지 교육과 전통과 역사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유림과 주민들로부터 크게 호응을 받을 뿐만 아니라 울진의 전통 및 역사의 우수성과 현재의 문화가 어우러져 공존하고, 새로운 창조문화의 혼이 담긴 문화공간의 요람으로 거듭나는 모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울진/장부중 기자  bu-jo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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