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에는 화초마저 없으니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


봄이 되면 자주 등장하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시구는 중국 한(漢)나라 때 왕소군(王昭君)의 시에 나온다. 서시(西施), 초선(貂嬋), 양귀비(楊貴妃)와 더불어 중국의 4대 미인 중의 한 사람인 왕소군은 중국 전한(前漢) 원제(元帝)의 궁녀였다.

원제에게는 궁녀가 너무 많아 일일이 친견 할 수 없었으므로, 화공(畵工)에게 초상화를 그리게 하여 궁녀를 맞아들였다. 이에 모든 궁녀들은 그림을 잘 그려 달라고 뇌물을 썼으나 왕소군만은 뇌물을 바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절세의 미인이었지만 왕의 부름을 한 번도 받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후 강성한 흉노(匈奴)와의 친화책으로 그림을 보고 원제는 가장 못생긴 왕소군을 선우에게 주었는데, 출가하는 왕소군을 보니 천하절색이었으므로 크게 후회했다고 한다. 왕소군이 선우를 따라갈 당시 중원의 날씨는 따뜻했지만 북쪽 변방은 차가운 바람이 몹시 불었다. 계절은 봄이었지만 추운 날씨로 인해 꽃은 피지 않았고, 원하지 않는 곳으로 떠나야만 하는 자신의 심정을 몇 줄의 시로 남겼다.

한(漢)나라 왕소군이 오랑캐 선우에게 시집간 지 이천 년이 지났지만 그가 지은 시, 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이란 글귀는 지금도 세인들의 입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꽃샘추위가 닥칠 때마다 사람들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글귀를 떠올린다. 사람은 가도 기록은 남아 있으니, 이 시를 읽고 이백은 '왕소군(王昭君)'이란 시를 두 편이나 남겼다. 그 중 한 편을 소개한다.


昭君拂玉鞍 (소군불옥안)
소군이 귀한 말안장을 잡아채고

上馬啼紅頰 (상마제홍협)
말 위에서 울어서 뺨이 붉어졌네

今日漢宮人 (금일한궁인)
오늘은 한나라 궁궐의 사람인데

明朝胡地妾 (명조호지첩)
내일 아침에는 오랑캐 땅의 첩이구나

- 李白「王昭君 (왕소군)」


올해는 봄이라는 계절을 실감하지도 못한 채 3월 중순이 훌쩍 지나갔다. 흐린 날씨에다 비가 와서 봄 날씨다운 화창한 날을 만나기가 드물었다. 3월이 되면 날씨가 화창해져서 꽃구경 한 번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들떠 있었지만, 벚꽃과 진달래가 채 피기도 전에 비가 오고 바람이 세게 불고 일교차가 심해서 감기까지 걸려서 몸이 개운하지 못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왕소군의 시구처럼 계절도 구분의 경계가 이렇게 모호할 때가 있듯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에드거 엘렌 포는 그의 단편 ‘때 이른 매장’에서 인생에서 “삶과 죽음을 구분하는 경계는 모호할 뿐이다. 어디서 삶이 끝나고 어디서 죽음이 시작되는지 과연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눈에 보이는 경계는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의 삶이란 늘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속에서 산다. 계절이 바뀌면 인생의 남은 시간도 그만큼 줄어든다. 삶은 영원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불확실하고, 모호하다 하더라도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는 깨달음을 느끼며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삶을 놓치지 않아야 할 것 같다.

우리의 삶에는 내일은 없다. 늘 지금이라는 현재 뿐이며, 내일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일 뿐이다. 주어진 순간순간을 대할 때마다 겸허하게 자신을 낮추고, 목표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 이 세상에 태어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겠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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