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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산책]솔라시 뷰티살롱윤혜주 수필가
   
“안 된다 안 돼. 여그는 주인이 따로 있다.”
“할매요. 길가에는 먼저 대는 사람이 임자시더.”
영춘화 꽃망울 부풀리는 이른 아침. 솔라시 뷰티살롱 앞에서의 작은 실랑이다. 머리카락을 쓸다말고 단숨에 뛰어 나온 미소할매가 몽당 빗자루를 휘두르며 주차를 저지한다. 풀풀 날리는 머리카락이 위협적이다. 후진하여 슬그머니 엉덩이부터 들이대려던 젊은 운전자는 ‘별일이야’를 외치며 기겁하여 내뺀다. 이때를 놓칠세라 미소할매는 잽싸게 빨래건조대를 가져다 철통방어 한다. 수차례 누군가를 쫓아내고 그 자리를 사수했을 숙련된 동작이다. 저 자리는 누구를 위한 자릴까. 잠시 후, 뷰티살롱 주인인 김여사의 빨강 모닝이 한 치 오차 없이 빨래건조대를 치운 자리에 주차한다. 솔라시 뷰티살롱의 하루가 시작 된다.

실내청소를 끝낸 미소할매가 돌아가자 길 건너편 덕산댁이 고개를 빠끔히 디밀고 들어온다. 부기가 있는 푸석한 얼굴은 간밤에 잠을 설친 흔적이다. 작년 가을에 표연히 떠난 영감님을 원망하며 지금껏 저 얼굴이다. 순수한 새의 울음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최소한의 외침이듯, 마치 떠난 이를 향한 남은 자의 할 일인 듯 밤마다 잠을 설치며 저렇듯 회한에 젖는다. 지난 추억을 회상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라지만 덕산댁이 처한 현재의 삶이 팍팍하여 더욱 그런지도 모른다.

뒤이어 강구댁과 새라할머니가 들어와 TV를 켜고 좌정한다. 지난밤 미처 챙겨보지 못한 연속극 얘기를 나누며 초췌한 얼굴의 덕산댁에 커피 한잔을 건넨다. 영업 준비를 서두르는 김여사의 표정 따윈 살필 필요가 없다. 그저 내 집처럼 편안하게 난로 가를 점령하고 앉으면 종일 내 자리다. 미소할매가 콧물을 줄줄 흘리는 주름쟁이 퍼그종 미소를 안고 다시 등장하면 솔라시 뷰티살롱의 본격적인 영업이 시작된다.

오늘도 컷트와 뽀글이 파마가 전문인 김여사의 손놀림은 재바르다. 이미 경지에 오른 가위손임을 자타가 인정한 솜씨다. 가격 또한 근동에서는 가장 저렴해 한 푼 아끼려는 어르신들이 그녀의 주 고객이다. 정해진 약속이나 부탁은 없지만 주로 머리카락 쓸어내는 일은 미소할매가, 파마 할 때 고무줄과 종이 건네는 사소한 일들은 강구댁이 돕는다. 파마를 풀거나 머리감기는 일도 누구나 자청해 거든다. 직원이 따로 없는 솔라시 뷰티살롱이 지금껏 건재한 이유다.

도심의 뒷골목 작은 상가들이 어깨동무하고 살아가는 이곳. 동네 어르신들의 사랑방 같은 은정 미용실이 있다. 나는 이곳을 솔라시 뷰티살롱이라 부른다. 도레미파솔라시도라는 8개의 음계 중 이미 절반의 음을 지나온 이들만 모인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그뿐이랴. 솔라시는 점점 올라가는 음이라 또 다른 변화와 발전을 의미하기도 해서다. 이순을 넘긴 이들이 모이는 공간이지만 생기가 있고 즐거움이 있다. 매사에 젊은이들 못지않은 열정과 삶이 있다. 글짓기공부를 해 백일장에도 나가고 댄스교실에 나가 건강관리도 한다. 다양한 교양과목도 듣고 동네 봉사카페에서 커피도 내린다. 멋 내기 염색에 피부에 좋다는 여러 정보도 공유한다. 몸에 좋다는 음식과 식재료는 공동 구입해 나눠먹는다. 어느 병원이 친절 하고 어느 한의원이 용하다는 소문도 긴밀히 나눈다. 가끔은 언론에 등장하는 이슈들을 놓고 짧은 토론도 벌이지만 각자의 생각을 존중하여 논쟁은 삼간다. 먼 인척보다 가까운 이웃사촌이 더 낫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서로 의지하며 유대관계도 끈끈하다. 녹록치 않은 현실을 위로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로움이다.

이곳은 누구나 끼 때가 되면 찬을 들고 와 나눈다. 앞앞이 가져온 반찬에 즉석에서 밥을 지어 그 시각,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함께 숟가락을 든다. 격 없이 나누는 한 끼 공동 식사다. 여름이면 시원한 에어컨이 있고, 겨울이면 따뜻한 난로가 있어 어르신들의 머무는 공간으로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예산 절감으로 자주 냉난방이 멈추는 동네 경로당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더구나 미용실은 밝고 넓다. 구순의 시모를 모시고 있는 김여사의 마음 씀씀이 또한 푸지다 못해 태평양이다. 이렇듯 도움을 주는 이들이 있어 김여사는 비용절감이 되어 좋고, 작은 힘이나마 보탠 대가로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어르신들은 심간(心肝) 편해서 좋다. 더불어 사는 상부상조의 지혜가 아닐 수 없다.

‘지나간 삶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두 번 사는 것과 같다’고 고대 로마시인 마르티알리스는 말했다. 솔라시 뷰티살롱의 이들 또한 지나간 삶을 즐기면서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얻어 다시 사는 삶의 충만함을 만끽한다. 서로 의지 할 때가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생존은 경쟁이 아니라 공생임을 알기에 살아온 지난 삶이 그들을 더욱 깊게 만들어 도리어 강해지는 나날이다. 그래서 서로의 관심과 위로는 그들의 삶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 행복한 사람, 영혼이 숨 쉬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매화가 피고 산수유가 맺혔다. 곧이어 진달래, 철쭉의 꽃이 열리고 무성해지리라. 아무도 꽃을 말하지 않아도 꽃은 때맞추어 피고 맑은 바람을 일으킨다. 그러나 찬란한 봄도 잠시, 봄날은 짧게 간다. 들이치고, 부딪히고, 몰아치는 세상의 번잡함에 이 봄의 황홀을 놓치기에는 한 번뿐인 인생이 너무 아깝다. 생각할 틈이 없다. 있는 그대로 즐기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 이 봄. 더 이상 내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내가 나를 다독여야 할 때, 힘들다고 외치기 전에 주위를 둘러보라. 어딘가 있을 솔라시 뷰티살롱 같은 그곳에서 마음의 품이 넓은 이들과 나를 잃지 않도록 삶을 지탱하는 지혜를 나눠봄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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