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

4월의 봄 향기를 맡으며 비행기는 인천 공항을 떠나 터키의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했다.
이스탄불 공항은 인천 공항보다 10배가 크다고 한다. 이스탄불의 옛 지명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다. 이 도시의 탐방은 뒤로 미루고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두 시간을 날아 베네치아(베니스)에 도착했다. 그리고 곧장 118개의 인공 섬들로 구성되고 180개의 성당이 있는 물 위의 도시로 향했다.

잠시 배를 타고 이동하는데 섬들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아름다운 물 위의 고대 도시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 중에 중심이 되는 장소가 성 마르코 성당과 광장이다. 아름답고 화려함의 극치를 달리는 이 성당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르노와르가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원래는 함께 있는 두칼레 궁전의 전용성당이었으나 1807년부터 베네치아 공화국의 중심 성당이 되었다.
그 앞에는 넓고 시원한 광장이 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 박사는 이탈리아에 3대 광장이 있는데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로마의 캄피돌리오 광장과 시에나의 캄포광장, 그리고 여기 성 마르코 광장을 꼽았다.

성 마르코(성 마가)성당은 신약성서의 4대 복음서 중 마가복음의 주인공인 ‘마가’의 유해를 봉안한 곳이다. 원래 그의 유해는 생애를 마감한 알렉산드리아에 있었는데 그 지역이 7세기 이후 무슬림의 지배를 받게 되어 보존이 불투명해졌다. 828년 전란을 틈타 두 명의 베네치아 출신의 상인이 헐값으로 매입해 유해는 나무상자에 담아 수레에 싣고 이슬람교도가 싫어하는 돼지고기를 가득 채우고 속여서 몰래 이곳으로 들여왔다고 한다.
이 성당은 11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서 완성되었는데 11세기 후반에 축성될 당시는 평범하게 지어졌고 이후 1204년 4차 십자군이 비잔틴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공략한 후에 승리한 댓가(?)로 많은 전리품들을 노획해서 교회 입구와 전체를 새롭게 장식하게 되었다. 베네치아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지배했던 비잔틴 제국도 치고 전리품도 챙기게 된 것이다.

둥근 하늘을 상징하는 5개의 돔 중에 중앙 돔으로 들어가는 정문은 각종 대리석으로 만든 기둥과 화려한 장식들로 가득하고 입구의 맨 윗부분에는 양쪽에 세 분씩 배치되어 있고 여섯 천사의 가운데 마르코 성인이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밑에는 날개달린 황금사자가 있고 황금사자 아래로 청동 말 네 마리가 있다. 이 네 마리의 말 동상은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이유로 많은 수난을 겪는다. 처음 이 말이 만들어진 때는 175년 로마시대이고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에서 제작되어 전차경기장에 장식되어 있었다. 십자군 전쟁 때 콘스탄티노플을 침략해서 노획한 전리품 중의 하나로 이곳 베네치아로 와서 성 마르코 성당 정문 위에 자리 잡았다. 이후에 나폴레옹이 1797년 베네치아 공화국을 점령했을 때 네 마리의 말 동상을 보고는 그 의미를 곧바로 알아차리고 마차에 실어 프랑스로 옮기게 된다. 그리고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고 전사한 군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고대 로마의 셉티므 세베르 개선문을 모방하여 카루젤 개선문을 만들고 위를 장식하게 된다.
네 마리의 말과 개선문은 모두 전쟁에 승리한 로마 통일 황제의 영광을 상징했으니 나폴레옹은 탐이 났던 것이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1815년에 퇴위한 후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로부터 베네치아로 반환되어 진품은 성당의 내부 박물관에 보관하고 문 위를 장식하는 네 마리의 말 동상은 모조품으로 얹게 된다.

바다가 만조기가 되고 해수면이 높아지면 상당지역의 땅바닥이 물에 가라앉아 장화를 신고 다녀야 되는데 이상기온으로 요즘은 더욱 물높이가 높아진다고 한다. 백양목 말뚝을 이중으로 둘러막아 물을 빼내고 흙을 채워 인공으로 만든 작은 섬들이 연결된 이 도시는 언제까지 사람이 살고 수면 위에 존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요즘은 가라앉는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고 한다.
인간의 삶과 죽음, 자연의 생멸현상에 예외는 없는 것 같다.

도시의 생성과 화려한 건축과 조형물들, 그리고 전쟁의 역사와 돌고 도는 약탈의 반복, 이러한 흔적이 존재하는 이 도시는 많은 교훈을 준다.

세계적인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유일하게 탈옥에 성공하여 다시 건넜다는 ‘탄식의 다리’를 보며 베네치아 탐방을 마무리 한다.
수상택시로 섬들의 가운데로 나있는 물길을 가로지르며 베네치아 항구로 돌아오는데 양쪽의 오랜 건축물들은 햇빛에 반사되어 세월에 바랜 풍부한 색들을 내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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