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융 스님

봄이 왔다. 봄꽃들은 경계 없이 피고 들녘 자연의 경전이 겨울 책장을 넘기고 있다. 가만히 봄 햇살에 기대 봄의 말씀에 귀를 열어보라.
모진 추운 겨울을 견디며 인내한 봄 싹들이 쑥쑥 입을 열고 창조의 소식을 전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가장 수지맞는 행운이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느 경전보다, 그 어떤 스승보다 치우침 없이 있는 그대로 나타내 보여주는 진리와 법음들이 자연이 아니겠는가.
자연은 때와 장소 어떤 상황에서든 소소영영(昭昭靈靈)하며 여여(如如)한 평등심을 나타내는 경전(經典)이다.
그러한 자연 속에서는 모두가 평화로워 진다.
그리고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자유와 지혜의 깨달음으로 나아가도록 모델을 제시하는 스승(師僧)인 것이다.

중국 송나라 최고의 시인 서예가인 소동파는 불교경전에도 능통하여 그의 질문에 선뜻 답하는 스님들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뛰어난 고승이 한 분 은둔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법담을 나누면서 '부처님의 진리를 가르쳐 주시어 저의 무지의 눈을 뜰 수 있게 해 주 달라'며 은근히 시험을 했다.
스님은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죽은 자의 말을 찾고자 하는가? 당신처럼 선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어찌 무정설법을 듣지 못하는가!" 호통을 치면서 쫒아 냈다.

8만4천 법문을 통달할 만큼 '유정설법'은 듣고 이해한 천하의 소동파도'무정설법' 사람의 말이 아닌 자연의 법음이 무엇인가? 에 말문이 막혀서 정신없이 산사를 빠져나왔다.
그는 그동안 머리로 알고 있던 모든 지식과 분별심이 살아지고 무정설법에 대한 의문이 일념이 되어 말을 타고 가면서도 말을 타고 있는지를 잊을 정도로 머릿속은 텅! 비워졌다.

마침 폭포 밑을 지나는데 웅장한 폭포소리가 귀를 때렸다. 순간 그렇게 답답하던 의문이 확 열렸다.
소동파는 없어지고 폭포소리만 있었다. 자연의 법음과 계합하여 우주전체가 된 것이다. 그는 말에서 내려 선사가 있는 토굴을 향해 절을 했다. 길가에 나뭇잎을 하나 주워 시를 적었다.

폭포소리가 부처님의 광대한 설법이요(溪聲便是廣場舌계성변시광장설)
산 빛 또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아닌가!(山色豈非淸淨身산색기비청정신)
이 밤에 팔만사천 시가 되어 오나 (夜來八萬四千偈야래팔만사천게)
내일이면 한 줄도 남에게 일러 줄 것이 없다네.(他日如何擧似人타일여하거사인)

그렇다. 자연은 인간이 만든 수 없이 많은 어떤 경전, 스승보다 진실하다. 편견이나 치우침이 없이 스스로 깨닫게 하는 냉철함이 있다. 늘 머뭄 없이 머물며 살아 움직이는 설법을 한다. 경전을 펼치면 광대무변한 우주 전체가 되고 페이지를 넘기면 시작과 끝이 없이 영원하고 위대하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보여주고 읽혀지는 ‘참 나’이기도 하다.

이러한 참 경전을 우리는 늘 가까이에서 함께 살고 있으면서도 선뜻 알아차리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다.
자신의 알음알이와 분별심이 본성을 가려서 보여줘도 볼 수 없고 들려줘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봄 길을 나서보라! 무엇을 담으려고 혹은 버리려는 모든 생각이나 식견 까지도 내려놓고.
텅! 마음을 비우고 내가 자연을 보려고 하지 말고 내가 자연과 하나 되는 마음을 가져라. 그리고 지구가 들어 보이는 꽃 한 송이가 되어보라! 그럴 때 자연이 그대에게 가장 귀중한 설법을 들려줄 것이니..........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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