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시티, 오르비에토

로마의 딸이라고 하는 피렌체의 위대한 영혼들을 만나고 토스카나주의 그림같은 초원지대를 지나 가파른 절벽 위의 도시 오르비에토를 방문했다.

언덕 위에 도시를 만들고 외곽을 깎아 내려서 절벽 위에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이곳 도시들이 대체적으로 위로 올라간 이유는 하늘에 가까이 가고 싶은 신앙적인 이유도 있지만 전쟁을 피하기 위함도 있고 페스트라는 질병이 쥐에서 옮기는 줄 모르고 위로 올라가면 괜찮을 줄 알았던 것이다.

‘슬로시티’의 본고장, 오르비에토는 유럽의 여러 도시 중에서도 중세가 가장 보존이 잘 되어 있다고 한다.
힐링의 도시, 점심을 3시간 동안 먹는 도시, 그리고 저녁이 되기 전에 이웃의 안부를 묻는 도시이다.
‘빨리 빨리’의 시대를 살아온 입장에서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이 도시의 슬로시티 운동은 가슴에 깊숙이 와 닿는다.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맥도날드가 1986년 로마의 ‘스페인 광장’에 매장을 낸다.
이 장소는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이 젤라또를 사먹고 계단을 오르는데 그레고리 팩이 숨어서 지켜보는 장면에 나오는 유명한 곳이다.
현대인의 바쁜 일상과 속도를 상징하는 대명사가 바쁜(busy)에서 나온 비즈니스와 빠른(fast)에서 나온 패스트푸드일 것이다.
패스트푸드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많은 반감을 가져왔고 슬로라이프(slow life)를 추구하고 슬로푸드(slow food) 운동으로 지역 고유의 전통음식을 지키려는 모임이 생겨나는데 이것이 차 없는 도시를 지향하는 ‘슬로시티’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1989년 패스트푸드점 금지법을 공포하고 슬로푸드 운동이 시작된 오르비에토는 1999년에 슬로시티 운동을 시작하고 몇 개의 도시와 연대를 했다.
이후 국제 슬로시티 연맹본부를 유치하고 다각적인 노력을 한다.
구시가지로 향하는 차량을 통제하고 그 중심에 있는 두오모 성당 주변에는 차량을 전면 통제하고 외부 차량의 도시 진입을 막는 대신 도심 외곽에 대형주차장을 만들었다.

195m의 바위산에 오르기 위해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푸니쿨라’라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랐다.
비닐하우스가 없고 제철 음식을 먹는 이탈리아, 특히 이곳은 음식에서 정신까지 자연과 전통문화를 아끼고 사랑한다.
도시 어디를 가도 골목골목이 1,00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돌출 간판이 없고 입구 위에 가게 이름이 작고 세련되게 붙여져 있다.
어쩌다가 등이 한두 개 정도가 간판을 밝히고 있고 작지만 화분과 꽃과 식물들로 꾸며져 있다.
우리처럼 눈이 부실 정도의 전기 불빛이 거리를 장악하지 않는다.
우리 도시의 가게들에 들어가면 일단 조명이 죽여준다는 느낌이 강하지만 여기는 내부의 등들도 눈의 피로감이 적고 노란색 위주로 정감 있고 따듯한 느낌이다.
대형마트가 없고 작은 상점에서 신선한 먹거리를 팔고 광장에서 주 2회 정도의 장이 서며 거기에서 주민들이 필요한 물건을 사고 판다.
백포도주와 로컬 푸드를 즐기는 오르비에토는 전통 가내수공업 제품들과 먹거리가 풍부하다. 어떤 접시가게는 입구를 접시들로 장식했고 어느 골목은 전부 꽃과 화분, 작은 의자 등으로 꾸며져 있다.

국제 슬로시티 연맹의 올리베티 사무총장은 이렇게 얘기한다.
“슬로시티는 부유한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지역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문화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도시라야 인증을 해주고 자전거 길과 친환경 숲 등의 환경적 여건이 어우러져야한다. 빨리 달리는 차보다 천천히 가는 자전거가 더 공해가 없고 그보다 마음 놓고 걸어 다닐 수 있는 차 없는 거리가 사람한테는 더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정부 기관이 아니라 비정부 기구와 민간단체, 그리고 시민들의 의견과 동의를 구해서 정책을 공유해야한다.”

오르비에토는 관광객의 유치가 목적이 아니라 주민들의 행복한 삶이 목표이고 오히려 관광객을 제한하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슬로시티는 1, 자연의 생태를 보호하고 2, 전통문화를 존중하며 3, 자연농법으로 재배한 로컬푸드를 먹고 4, 지역의 특산품과 공예품을 지키며 5, 지역민 중심의 지방의 세계화를 지향한다. 그리고 창의적이고 첨단의 아이디어를 수용하기도 한다.
슬로시티의 선정은 6 ~ 10 개월간 심사를 하고 선정이 되더라도 4년마다 재심사를 받아야 한다.
지금도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으며 한국에도 6곳이 선정되었다. (전남 4, 경남 1, 충남 1) 제주도도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일본과 중국은 한 곳도 없다고 한다.
우리도 보면 간간이 명상센터가 생겨나고 있다. 천천히 걷기와 명상도 하고 요즘은 멍때리기도 한단다. 바쁜 일상을 지우고 잠시 비워둠으로써 몸과 마음이 쉬는 것이다.

다시 내려오는 마을 입구에서 아랫마을을 내려다보니 옹기종기 모여 사는 집들이 정감 있게 보여 몇 번 셔터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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