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미래, 동반성장에서 찾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국무총리)이 26일 오후 7시 포스텍 국제관 1층 대강당에서 '대경리더스아카데미' 특강을 한다. 정 이사장의 '한국경제의 미래, 동반성장에서 찾다'란 주제 특강 내용을 소개한다.(편집자 주)


□변혁의 요구와 한국경제의 현실

21세기 자본주의는 변혁의 요구에 직면해 있다. ‘자유’와 ‘경쟁’을 무한히 허용한 신자유주의가 전면화하면서 경제 불평등, 양극화, 일자리 부족이 심화되었다. 그 결과 계층 간 갈등이 격화하고 사회 불안이 증폭하였다.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에 대한 변혁 요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여러 형태로 제기되었다. 2011년 월가 점령시위가 밑으로부터의 대중에 의한 요구였다면, ‘대전환: 새로운 모델의 형성’을 내걸고 개최된 2012년 다보스포럼은 위로부터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변혁 모색이었다.
한국경제 또한 변혁의 거센 요구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금 한국경제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

밝은 면을 보면, 한국은 세계에서 인구가 5천만 명이 넘으면서도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가 넘거나 근접한 세계 7개 국가 가운데 하나다. 다른 6개국은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다.
어두운 면은 저성장과 양극화다. 1980년대 8.6%, 1990년대 6.7%이던 경제성장률이 2000년대 들어서는 4.4%로 하락하더니 최근에는 2%대까지 떨어졌다. 소득분배도 점점 악화되었고, 삼성·현대·LG·SK 등 4대 재벌의 1년 매출액이 GDP의 60%에 육박할 정도로 재벌 의존도가 커졌다. 이 수치는 80년대 초반만 해도 20%에 불과했다. 이처럼 경제적 힘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경제 전체의 활력이 떨어졌다. 이대로 놔두면 경제가 쇠약해짐은 물론이요, 언젠가는 사회 전체가 결속력을 잃고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휩싸이게 될까 봐 우려된다.

한국경제의 밝은 면은 더 밝게 하고 어두운 면은 덜 어둡게 해야 한다. 한국경제를 크게 성장시킨 요인부터 보면, 교육 및 인적자원 투자에 대한 강조가 핵심적이었다. 주요 천연자원도, 축적된 자본도 없는 한국으로서는 경제성장을 추진하기 위해 교육수준이 높은 노동력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요인은 ‘하면 된다’는 과감한 도전정신이었다.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많은 한국인은 자신과 가족과 공동체를 빈곤에서 구제하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다했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있는 곳이라면 먼 타국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일함으로써 현지 경제뿐 아니라 한국경제 또한 발전시켰다.
이처럼 교육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와 과감한 도전이 가능했던 것은 그런 헌신적 노력으로 더 나은 미래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밝은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함께 잘살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했기에 강력한 국민적 결속력이 생겨났다. 희망을 공유하고 같이 나누며 함께 성장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두운 면은 어디서 유래할까? 한국경제는 ’재벌 중심·수출 주도’의 선성장·후분배 불균형 성장전략이 정책의 기본 전략이었다. 수출 및 중화학공업과 같은 특정 부문을 선도부문으로 먼저 육성하고 그 성과가 경제 전체에 파급되기를 기대하는 이른바 낙수효과 모델에 전적으로 의존해 왔다. 성장과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 지상 목표였고 분배와 형평은 부차적 고려사항이었다.

물론 이러한 불균형 성장전략은 경제개발 초기 단계에서는 매우 효과적일 수 있지만, 언제까지나 그런 건 아니다. 불균형 성장의 결과 소수 대기업에 편중된 산업구조가 고착되었고, 국민 대다수의 고용과 소득을 담당하는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수직적 관계 속에 불공정 거래를 감수해야 하는 위치로 전락했다.

또한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가계부문과 기업부문이 양극화의 가속적 심화를 경험하면서 분배문제가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왔다. 소득집중도는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15%를,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7%를 차지해 미국 다음으로 심각한 수준이다. 그 배경에는 ‘고용 없는 성장’을 넘어 ‘임금 없는 성장’의 문제가 경고될 정도로 기업들의 일자리 창출은 없고 임금인상에 인색했다는 사실이 있다.

그 결과 가계부채와 중소기업 부실은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는 양대 문제로 자리 잡았다. 우리 사회에서 분배의 공정성을 개선하지 않고는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 핵심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가계부채가 너무 많으니 다들 허리띠를 졸라 맬 수밖에 없다. 내수가 줄어드니, 특히 중소기업과 자영업은 타격이 크다. 이때 수출 대기업의 훌륭한 성과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국내 소비 및 투자의 위축은 성장 둔화와 양극화 심화를 가져왔다. 이것은 ’양극화 심화 → 가계부채와 중소기업 부실 누적 → 내수 부진 → 성장 둔화 → 양극화 심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한국경제에 반복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양극화는 이미 경제영역을 넘어 우리 사회 전 영역에 구조화되었다. 사회적 양극화와 시장의 불평등은 사회의 역동성, 효율성, 그리고 생산성을 마비시키고,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해 사회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 성장 과정과 궤를 같이하면서 구조화된 경제불평등과 그 결과물인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은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근본적 해결에는 많은 시간과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부자이든 영세민이든,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한국경제라는 배에 동승한 현실에서 더 이상 실기하면 모두가 공멸이다. 동반성장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신자유주의 이후의 사회작동 원리 : 동반성장

역사적으로 모든 사회는 구성원들의 사회적 행동을 비롯하여 정책·제도·법의 내용에 영향을 주는 중심적인 작동원리가 있었다. 중상주의는 국가의 부(富)가 금·은과 같은 귀금속을 축적하는 것에서 발생한다고 보아 생산과정보다는 유통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소수에게 특권을 주어 무역과 유통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독점시장을 형성토록 했다. 이것이 중상주의 사회의 작동원리다.

자본주의 경제 질서는 다양한 형태로 변화해 왔다. 그러나 두 가지(개인의 자유로운 경제활동, 공정한 관찰자에 의한 조정과 통제) 원리가 하나의 토대로 기능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작동원리는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아담 스미스 시대의 고전적 자본주의는 개인의 공정한 관찰자 개념을 국가로 확대한 케인즈적 자본주의를 거쳐 개인의 자유로운 경쟁을 극대화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로 변화해 왔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위기를 맞았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위기를 맞은 것은 아담 스미스가 정립한 자본주의의 두 가지 사회작동 원리 가운데 ’공정한 관찰자에 의한 개인 이기심의 조정과 통제’를 배제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경쟁’만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사회에는 사회적 정의는 본래 존재하지 않는다. 능력주의와 실력주의란 명분으로 적자생존의 법칙이 인간사회에 관철되면서 오직 자본의 이윤 추구만이 인간의 삶과 사회를 결정할 뿐이다. 그 결과는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양극화였다.

바로 여기에 동반성장이 필요하게 된다. 동반성장은 신자유주의와 달리 개개인을 상호작용의 관계를 갖는 공동체 사회 구성원으로 본다.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동반자’ 관계로 설정한다. 동반자 관계란 서로가 서로에게 대등한 관계로 함께 살아가는 관계다. 그래서 개인이 구현할 수 있는 행복과 자유는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행복과 자유, 그리고 공동체 사회에 구현된 행복과 자유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즉, 동반성장은 이타적 이기주의를 기반으로, 개인과 사회를 분리하지 않고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 구성원들의 행복, 나아가 공동체 사회의 행복을 함께 추구한다. 그것이 함께 성장하고 더불어 나누는 가치다. 이러한 가치를 바탕으로 사회제도·법·정책이 만들어지고 구현될 때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가 서로 행복을 증진하는 동반성장 사회로 갈 것이다. 동반성장은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누자’란 것으로 공동체 사회 구성원인 정부, 기업, 개인의 행동 기준인 동시에 지속 가능한 공동체 사회의 가치이며, 사회의 작동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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