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주 수필가

큰무당거미가 줄을 쳤다. 베란다 난간 한 쪽에 지은 집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허술하기 짝이 없다. 어둡고 습하긴 해도 바람 없는 계단 밑에 안전가옥(安全家屋)을 짓던지, 아니면 숲속에 이슬 머금고 찬란하게 빛나는 궁궐 같은 집을 지을 일이지, 작은 바람에도 끊어질 듯 낭창거리는 녀석의 집이 여간 불안해 보이지 않는다. 하루살이 한 마리 걸려 들것 같지 않는 집이다. 그러나 명색이 주인이랍시고 여덟 개의 다리를 쩍 벌리고 있는 폼이 제왕 포스다. 녀석이 지은 집이 어디 저것뿐일까. 더구나 성충{成蟲}이다. 저런 집에서 먹이를 기다리고 있는 녀석의 당당한 배짱에 설핏 웃음이 나온다.

‘곧 바람에 사라지겠지.’ 굳이 수고할 필요가 없겠다 싶어 녀석의 집을 거두려 간 빗자루를 내려놓는다. 그러나 언감생심 놈은 조용하고 참을성 있게 먹잇감을 기다리는 눈치다. 그러나 오가며 눈여겨 살펴봤지만 며칠째 그 자리다. 탄력성으로 잘 정돈된 줄이 신축성으로 팽팽하게 유지되어 있는 걸로 보아 아직까지 녀석은 빈손인 게 틀림없다. 고립된 저 곳에서 녀석은 어떻게 줄을 통해 먹이활동을 하며 살아갈지 내심 궁금해진다.

며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바람 앞에 가랑잎 같은 녀석의 집도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간간이 비도 내렸다. 온전할 리가 없다. 그러나 다음날. 창문 밖 녀석의 집은 멀쩡했다. 온전히 여덟 개의 다리를 줄에 단단히 걸치고 웅크린 채로 바람과 비에 맞서 태연하게 달라 붙어있다. 머리의 위치를 위, 아래로 바꿔가며 다리의 배열을 달리해 중력에 대처하는 지혜를 발휘하면서.

굵은 빗방울과 변화무상한 바람이 스쳐갔을 녀석의 몸뚱이는 외려 함치르르 윤기까지 난다. 어디 그 뿐인가. 다리를 뜯긴 채 줄에 돌돌 말려있는 작은 거미와 나방 몇 마리도 먹잇감으로 걸려들어 있다. 녀석은 보란 듯이 사냥의 성공을 자축하며 걸러든 먹잇감에 입맛 다시는 중인 듯하다. 마치 산다는 것은 별것 아니라는 듯, 그러니 너무 감탄할 것도 없다는 듯, 그렇지만 감동이라는 듯, 보란 듯이 건재했다.

시장 동편 끄트머리에 작은 방앗간이 있다. 빛바랜 삭은 슬래트 지붕을 이고 좁고 어둑한 석이네 방앗간은 내 오랜 단골집이다. 철철이 대가족의 먹거리 양념이며 잦은 가족행사의 단골메뉴인 떡을 하려 꽃 각시 시절부터 들락거리던 곳이다. 그 곳에는 말없이 황소 눈을 껌뻑거리며 좀체 표정 변화 없는 석이네가 있다. 단골들의 다양한 입맛과 취향뿐 아니라 집집마다 행해지는 경조사나 제사도 훤히 쾌 뚫고 챙기는 속정 깊은 여인네다.

좋은 시설에 다양한 장비를 갖춘 시장 중앙통의 방앗간에 비할 바는 못 된다. 편리함과 속도, 효율에 길들어진 손님들이 줄 서는 그곳의 매상과도 경쟁이 안 된다. 덜덜거리며 요란하게 돌아가는 빻는 기계 두어 대와 낡은 떡시루 서너 개가 전부다. 게다가 초행자들은 찾기 쉽지 않는 좁은 골목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있는 힘껏 밀어야 겨우 밀려나 출입을 허용하는 낡은 미닫이문과 떡 주무르는 오래된 나무 좌판대는 쉬는 날이 없다. 천성이 부지런하고 손님들의 의중을 정확하게 파악해 일을 하는 덕에 석이네 손을 한 번 거쳐 간 이들은 곧 단골이 되기 때문이다.

방앗간이 바쁠 때면 몸이 불편한 남편과 아이들이 번갈아 방앗간을 도우러 나왔다. 그런데 자그마치 아들만 다섯이었다. ‘금술 좋아 욕심 많게 아들이 다섯이냐.’며 은근 놀려대도 석이네는 웃기만 할뿐이었다. 훗날 그 중 셋은 고아가 된 형님네 아이들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분별없이 굳건히 품어 안고 사는 그녀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녀의 삶이 감동이다. 몸을 다쳐 경제활동이 중단된 남편과 다섯 아이를 반듯하게 키워낸 강하고 올곧은 여장부의 삶이다. 가느다란 실이 어딘가에 닿을 때 까지 모험하고 내던져 끝내는 연결시키는 거미처럼. 일생 방앗간이라는 터전에 유연한 닻을 내리고 삶의 영역을 구축했다. 누군가에겐 한낱 초라하기 그지없는 곳이지만 그곳은 그녀가 흘린 땀과 눈물이 밴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어쩔 수 없이 삶은 살아져야하기에 황량하고 넓은 벌판에 홀로 촛불하나 들고 진득이 인내하며 우직하게 지킨 자리기도 하다.

고단한 삶의 무게를 자기 몫만큼 지고 살아가는 게 인생이다. 세상이 우리를 차갑고 냉정하게 만들기도 했고 뜨거운 감정도 끓어오르게 했다. 울 일이 없어 울지 않는 게 아니다. 희망의 대상이 있어 그저 치열하게 삶에 몰입할 뿐이다. 결국 무의미한 생존이란 없다. 광막하고 거대한 주위환경을 탐험하고 생존을 위해 소리 없이 참아내는 거미가 오직 거미줄에 의지해 살아가듯, 그녀 또한 어깨에 매달린 생명줄 같은 다섯 아이가 있어 그토록 치열하게 살지 않았을까.

무당거미가 사라졌다. 거미집은 폐가처럼 보였다. 며칠 뒤 바닥에 떨어져 죽어있는 무당거미를 발견했다. 산란 후 체력이 다해 쓰러진 게 틀림없어 보인다. 홀쭉해진 배와 새끼의 먹이로 내어준 육신의 흔적도 선명하다. 한 생을 치열하게 살다간 무심한 존재의 흔적을 지우려 빗자루를 들고 간 내 눈에 이럴 수가! 폐가엔 새끼거미들이 오골오골 집을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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