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6월 6일은 제63회 현충일이었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과 국토방위를 위해 전투에 참여하여 산화한 전몰장병을 추모하고, 명복을 기원하는 동시에 유가족 분들께 조의를 표하며, 온 국민이 나라와 애국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날이다.

또한 현충일 맞이하면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이 겨레와 나라위해 목숨을 바치셨으니, 그 피 흘린 정성이 영원히 조국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충혼은 영원히 온 겨레의 가슴에 있어 임들은 불변하는 민족의 상징이 되어 날이 갈수록 그 충성이 더욱 새로워지고 있다. 이에 보답하기 위해 조국의 山河(산하)가 용사들을 안정시켜 주기를 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현충일 하루 전인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국가유공자 및 보훈가족을 초청하여 점심을 대접하였다. 이 자리에는 애국선열과 전몰장병의 유가족과 천안함 희생 장병 유가족 등 현충일 행사에 당연히 모시고 기려야 할 대상자 외에도 5·18 광주사태와 세월호, 軍疑問死(군의문사) 관련 가족 등도 함께 초청됐다.

이날 행사의 주제는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당신을 기억합니다.'였다. 한국일보는 이 초청행사를 '모두 끌어안은 청와대 보훈행사'라고 보도했다. 報勳(보훈)이라 함은 '국가의 존립과 주권수호를 위해 신체적, 정신적 희생을 당하거나, 뚜렷한 공훈을 세운 사람 또는 그 유족에게 국가가 적절한 보상을 해 주는 것'을 말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회를 위해 의로운 일을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것에 대해 나무랄 국민은 없다. 다만 희생의 격에 맞게 해야지 '모두 끌어안은 청와대 보훈행사'로 시행한 것은 현충일 제정의 뜻을 크게 희석시킨 오찬행사라 할 수 있다.

민주화 운동이나 세월호 관련 희생자와 의사자를 두고 순국선열이나 호국영령이라 부르지는 않기 때문에 현충일과 관련한 행사에 초청되거나 예우를 받을 수 없다.

현충일을 앞두고 마련한 보훈행사라면 현충일 제정의 취지에 맞는 대상자를 초청해야지 여러 대상을 모아 오찬회를 벌인 것은 현충가족에 대한 결례이다. 현충일 추모 모임을 희석시켰다는 지적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현충일이란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친 이의 충성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가지고 있다. 6월 6일은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 및 전몰장병의 숭고한 넋을 위로하고 충절의 호국정신과 위훈을 추모하며 조기 게양을 하는 국가가 지정한 공휴일이다.

‘현충일’이라는 명칭은 1907년(숙종33년) 이순신 장군의 충렬을 기리기 위해 세운 현충사에서 유래했다. 그리고 6월 6일을 현충일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는데, 우리 역사 기록상 처음으로 국가가 전쟁에서 희생된 군인들을 위한 제사는 고려 현종 15년(1024) 때였다. 강감찬이 이끄는 고려군이 귀주대첩 등 거란과의 3차 전쟁을 통해 고려 현종 9년(1018)에 거란 군을 물리쳤다. 이후 6년 만에 나라가 안정되자 전쟁에서 전사한 군인들에 대한 제사를 6월 6일에 지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보인다.

처음 현충일 제정당시에는 추모의 대상이 6.25김일성남침전쟁에 순국한 국군과 경찰에 국한된 호국영령만 기리는 날이었으나, 1965년 3월 30일부터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에게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독립투쟁을 벌이다가 희생된 모든 순국선열까지 함께 추모하게 되었다.

우리 대한민국은 지난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 이후 2년도 못 된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6.25김일성남침전쟁을 맞았다. 약 40만 명 이상의 국군이 사망하고, 100만 명에 달하는 일반 시민이 사망하거나 피해를 입었다.

필자의 先考(선고)께서도 6.25김일성남침전쟁 평양탈환작전에서 산화하신 전몰장병 가운데 한 분으로서 벌서 69년이나 되었다. 필자는 유자녀로 72년을 살아온 셈이다.

지난 1953년 7월 27일에 휴전이 성립되고, 나라에 안정이 찾아오자 정부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국군과 경찰, 독립유공자 등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정신과 위훈을 추모하기 위해 지난 1956년 4월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따라 6월 6일 '현충기념일'로 지정하고 공휴일로 제정한 것이다.

이에 앞서 1953년 9월 29일 동작동에는 6·25김일성남침전쟁 중 순직한 국군장병들을 안치하기 위한 국군묘지의 설치가 확정되었다. 정부는 1955년 7월 15일 국군묘지관리소를 발족하고, 이듬해 4월에는 국군묘지설치법을 제정해, 군 묘지의 운영과 관리를 제도화했다.

이 과정 중 1956년 4월 19일에는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여, 6월 6일을 '현충기념일'을 공포하게 되었다. 이날은 통상적으로 '현충일'로 불리다가 1975년 12월부터는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면서 공식적으로 처음 지정된 '현충기념일'을 '현충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부터는 대통령령, 공휴일로 정하게 되었다. 현재 모든 행사는 보훈청이 주관하여 수행하고 있다.

현충일의 주요 행사를 살펴보면, 현충일의 제정 이후 이전의 산발적으로 열리던 추모 행사는 국방부 소관으로 시행되었고, 1988년부터는 개별적으로 실시되었던 추념식과 참배행사를 보훈청 등이 주관하여 국립현충원, 또는 대전국립묘지, 현충탑에서 거행한다.

추모 기념식애서는 대통령 이하 정부요인들, 그리고 국민들이 함께 참배한다. 이밖에 오전 10시 정각에 울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전 국민은 1분간 경건히 묵념을 하여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숨진 국군장병 및 순국선열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갖는다. 각 관공서를 비롯하여 각 기업, 단체, 가정 등에서 조기를 게양한다.

따라서 진정한 애국과 호국의 길은 “몸과 마음을 조국과 국익을 위하여 헌신하는 것에 있다.”고 하는 이 피맺힌 절규(絶叫)가 애국시민 가슴마다에 용솟음치는데 있다. 또한 호국영령과 순국선열 및 전몰장병은 바친 희생의 격에 맞게 예우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아울러 忠烈(충렬)을 높이 드러내는 顯忠精神(현충정신)을 宣揚(선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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