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태 편집국장

나는 가끔 골치 아픈 일이 있거나 생활에 권태로움을 느낄 때에는 버스를 타고 일정한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산이나 바다로 떠나곤 한다.

두호동 바닷가나 구룡포, 칠포, 대보, 호미곶 등을 찾기도 하고 때로는 시내에서 가까운 부학산, 수도산, 탑산이나 버스 노선이 비교적 가까운 내연산 보경사를 찾기도 한다.

바다를 찾게 될 때에는 주로 내 마음이 울적해 질 때이다. 바다를 찾으면 바다의 넓고 깊은 신비함에 의해 내 마음이 동화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한정 포용해주는 바다를 찾는다.

그러나 산을 찾을 때에는 울적한 마음일 때보다 뭔가 나를 꽉 조이고 있다는 답답함을 느낄 때나 너무 위로만 쳐다보고 살아가는 현대인들 모습에서 탈피하고픈 충동을 느낄 때 무작정 산을 찾게 된다.

보통 산을 찾는 사람은 산이 좋아 산을 찾는 사람도 있고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찾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일부 사람들 중에는 도시의 공해 속에서 빠져나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자연과 호흡하기 위해서 찾는 사람도 더러는 있으며 또 일부의 사람들은 산의 정상을 정복하여 자신이 살아 호흡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평소에 억눌렸던 감정을 산에다 놓아두고 가기 위해 찾는다.

'직장에 나가면 말단 사원이지만 산에 오면 자신이 왕이다'라는 말이 실감나게 큰소리로 외쳐대는 사람도 있다. 흔히 도시 생활에서 위로만 쳐다보며 생활하는 현대인들, 산에와서도 역시 변함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 흔히 등산을 한다고 한다. '오를 등,뫼 산' 산을 오르는 것을 등산이라고들 한다. 산을 찾는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서는 순간부터 바쁘게 산의 정상을 향하여 오른다. 달리기도 하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 올라 가기도 한다.

그러나 나같은 사람은 등산이라기 보다는 사산 한다고나 할까? 생각하면서 서서히 산을 오른다.
오솔길의 길모양도 구경하고 길 옆 들국화나 작은 풀잎도 구경하며 계곡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도 들으면서 평지거나 가파른 길이나 높고 낮은 길 할 것 없이 모두 골고루 시간을 할애하여 자연과 대화를 하면서 걷는다. 어떤 때에는 이름모를 새가 다가와서 나에게 인사도 하고, 처음 들어보는 아름다운 노래도 들려준다.

때로는 다람쥐나 산노루와의 만남도 갖는다. 이렇게 산에 빠져들면 내자신과 산은 한마음이 되어 버린다. 무혼아심이라고나 할까, 무념무상의 경지에 빠져든다고나 할까? 그렇게 걷다보면 정상에 도달하지 못하고 항시 산중턱에서 내려오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내마음은 산꼭대기를 정복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기분, 희열 같은 것 못지 않게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며 흠뻑 젖어 취해 내려온다.

오늘의 현대인들 너무 위로만 쳐다보며 살지말고 주위도 살펴가며 아래도 내려다 보면서 살아가면 어떨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등산보다 자연과 일체감을 느껴 흠뻑 취해볼 사산을 하면 어떨까?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좋은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시간은 항상 그자리인데 스물 네시간 원 속에서 생활하는 모든 인간들은 시간의 조임속에서 변화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시간을 알고 난 후의 인간은 더욱 인간다운 생활을 상실한 비참한 생활이 시작되지 않았을까? 짧은 인생의 시한을 알고부터 사악함이 더욱 날뛰지 않고 있나 싶다.

산을 찾아 사산한 후 귀가길에 조용히 내자신을 돌이켜 볼 때 매일 반복되는 생활속에서 항시 어리고 어림을 깨닫게 된다. 한 송이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산 속에 살고 있는 이름모를 풀꽃은 누가 쳐다보든 않든 아랑곳 없이 단 한 번의 꽃을 피우기 위해 모진 바람이나 폭우를 맞아 쓰러지지 않고 묄게 견디어 낸다. 다가오는 고통과 고난을 오히려 자신에게 돌아오는 당연한 것인 양하고.

비를 맞을 때는 영롱한 원초의 물방울을 만들어 내며, 눈이 쏟아질 때는 또 다른 아름다운 백설꽃을 만들며 새벽이슬을 잉태한다.
주어진 생명력의 귀중함을 느끼며 고통과 고난을 영광의 환희로 만들어 가면서 다소곳하게 자신을 지킨다.

또한 도시 생활에 지쳐 피로한 현대인들에게 자연의 신비함과 형상의 아름다움과 인내하는 법을 깨닫게 해주며, 진정한 삶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가의 진정한 삶의 가치를 일깨워 준다. 일 년이란 짧은 수명 속에서 단 한 번의 꽃을 피우기 위해 매일 삼라만상의 자연과 호흡하며 산과 대화하며 자신의 위치를 지킨다.

'산다는 것은 참고 견디는 것이다'라고 누군가가 말했지만 단지 참고 견디는 것만으로서 산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참고 견디는 가운데에서 진한 아름다움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꽃을 피울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물질 만능 속에서 입신양명을 위해 위만 쳐다보며 바쁘게 생활하는 현대인들. 산을 찾는 기회가 있으면 흐르는 계곡의 물이나 이름없는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나무 한 그루와도 대화하며 여유있게 사산을 해보면 어떨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벌써 휴일의 늦은 오후 해가 점차로 빛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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