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휴일 집에서 모처럼 음악방송을 듣는데 어릴 적부터 허물없이 지내는 형이 전화를 했다. 저녁이나 같이하며 얼굴 한 번 보자는 말에 형을 만나러 약속 장소로 나갔다.

형과 나는 중·고교시절부터 허교(許交)하는 사이다. 형은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음악과 벗하며 살아왔고, 지금도 사만 명 이상 되는 회원을 위한 인터넷 음악방송을 십오 년 동안 운영자로 활동하고 있다.

괴테는 이런 말을 남겼다.“자기 집에서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다”고. 그런 의미에서 형은 평생 집에서 음악과 함께 한 자신의 세계만을 지니고 있는 행복한 사람이다.

둘은 세상사는 얘기와 학창시절에 즐겨 들었던 음악 이야기, 거기다가 못 먹는 소주 한 잔까지 곁들여져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자 형과 나는 술로 데워진 머리도 식힐 겸 근처의 노래방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삼십 년 가까이 소식을 몰랐던 고향 후배를 만나게 되었다. 나에게는 일 년, 형에게는 삼 년 후배가 되는 아름다운 여성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우리가 고등학교 다니던 칠십 년대 후반에는 남학생과 여학생의 엄격한 구별이 있었고, 특히 나 같이 부끄럼을 많이 타는 사람은 여학생이 옆을 지나치기만 해도 부끄러워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그나마 후배의 집이 구멍가게를 했기 때문에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막걸리나 생필품을 사러갈 때 가끔씩 보았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데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뀐 지금, 나는 후배의 얼굴이 전혀 기억에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후배가 먼저 형을 기억하고 곧 나를 기억해 주어서, 순식간에 타임머신을 타고 삼십여 년 전 추억의 세계로 되돌아가는 행운을 누렸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고 보니 후배는 형의 여동생과 친한 친구였고, 나와는 일 년 후배였지만 학교에 늦게 입학을 해서 나이는 같은 동갑내기였다. “현대인들에게는 만남은 없고 스침만 있다"고 마르틴 부버가 말했던가. 아마 예쁜 후배가 우리를 모른 체 했다면 그냥 지나가는 스침으로 끝났을 일이었다.

벗은 설움에서 반갑고/님은 사랑에서 좋아라/딸기꽃 피어 향기로운 때를/고추의 붉은 열매 익어가는 밤을/그대여 부르라, 나는 마시리// - 김소월의 시, <님과 벗> 전문

우연히 후배를 만나 나눈 옛 이야기 몇 소절에, 짧은 순간이나마 망각의 강 저편으로 돌아가, 딸기꽃 피어 향기롭던 산과 고추의 붉은 열매 익어가는 달밤을 떠올리며 고향을 생각했다. 김소월의 시처럼 그대(형은)는 지난 학창시절의 노래를 구수하게 부르고, 나는 그 노래들을 귀로 가만히 마셨다. 노래는 천천히 나의 위벽을 타고 온 몸에 젖어들었다.

그렇게 두어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우리는 옛날로 돌아가 십대의 청춘이 되어 있었다. 오늘이 지나면 이 아름다운 유월의 밤을 언제 다시 맞이할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길은 고향으로 향한다는 말이 있다.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우리가 도달할 길도 결국은 고향이 아닐까? 어느 곳에 살든지 누구나 고향이라는 말만 들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리움에 목이 메는 것은 유년의 아름다운 원형이 머릿속에 고스란히 흑백영화처럼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아이들은 그림책으로 집을 짓고/아내는 건넛방에서 낮잠을 자고/나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향수를 들으며 쉬는 휴일//고향 뒷산, 뻐꾸기 처량히 울고/밤꽃향기 온 동네 물들이던/어린 시절 고향을 가만히 떠올립니다//도시의 개발에 밀려/지금은 없어져 버린 고향/내 유년을 송두리째 덮어 버린 아파트의/그 육중한 무게에 눌려 한여름에도/겨울처럼 차가운 가슴으로/ 조각난 유년의 고향을 되새김질합니다//잊어야 한다/아스라한 한 때의 아름다웠던 기억들//지나가는 바람이 그때를 부추긴다 해도/다시 돌아올 고향은 아니다//장대로 줄을 받쳐 빨래를 말리고/바지랑대 끝에 앉은 고추잠자리를/조심스레 잡던 어릴 적 발자국 소리는/더 더욱 바라볼 수 있는 고향은 아니다//내 영혼의 부끄러움과 열정이/묻어 있던 고향의 쑥대밭/이제는 아파트로 하늘같이 높아졌구나//앞산에 걸려있던 붉디붉은 노을, 이제는 아파트 옥상에 걸려 있구나// - 졸시, 「鄕愁를 들으며」전문

아파트 숲으로 변한 내 고향을 떠올리며 오래 전에 쓴 시다. 지금은 도시개발로 본래의 모습이 모두 사라지고 없지만, 봄이 되면 소를 몰고 "이랴! 이랴! 쟁기질 하던 어른들의 정겨운 소리. 참꽃과 삘기로 허기를 달래며 온 산천을 누비면서 놀다가 개구리 울음소리 들으며 잠들었던 고향. 여름이면 물총새 소리 들으며 삽을 매고 새벽이슬을 털며 논둑을 걸으며, 물꼬를 보던 아버지의 피땀이 서려 있던 곳.

가을이면 들판 여기저기서 왁자하게 들리던 탈곡기 소리. 발갛게 익어가는 저녁노을 속으로 아련히 피어오르던 굴뚝 연기. 겨울이면 자치기와 스케이트를 타다가, 시린 손 호호 불며 논두렁에 불을 질러 추위를 쫓고, 부엉이 울음 들으며 겨울밤을 보냈던 그 시절들. 무지개처럼 아름다웠던 고향을 망각의 기억에서 건져 올려준 후배의 만남 때문에 형도 나도 꿈결같이 보낸 행복한 하루였다. 살아가면서 이런 아름다운 날을 우연히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진정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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