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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비우는 것이 사랑이다

나를 소개하는 명함이 있다면 거기에 어떤 내용들을 담을 것인가?
타인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참 많은데(대개는 부정적인 내용), 나 자신을 소개하려고 하면 특별히 소개할 내용이 없는 것 같다. 그 이유는 너무 세상적인 것들에만 생각이 머물기 때문이 아닐까?
이름, 나이, 학교, 고향, 사는 동네, 하는 일, 취미…, 그게 사실 나를 드러내는 전부는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세례자 요한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요?」 ‘저는 요한입니다’고 대답하지 않는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한다. 이 대답 안에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함축적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겉으로 가꾸어진 삶의 모습으로서의 신분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내고 살아야 할 하느님 앞에 서 있는 모습으로서의 삶을 소개하고 있다.

자신의 존재가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다가서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임을 발견하게 된다.
요한의 사명은 빛이 되는 것이 아니라 빛을 증언하는 것이다. 요한은 광야에서의 삶을 통해서 오시기로 약속된 분을 위해서 자신은 도구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야 하는 예언자여야 한다는 것을 잘 깨닫고 있다.

이런 삶의 모습 때문에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에 세상이 말하는 이력서가 아니라 「나는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는 하느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오시기로 되어있는 분이 있다. 그분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이시다. 그분 앞에 나아가 서 있으려고, 그분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열심히 기도하며 살고 있다. 「그분 앞에 다가서기 위한 노력」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세례자 요한이 그러했던 것처럼 세상의 많은 가치들, 마음을 빼앗겨 물리치기 어려운 가치들,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가치들(공부, 재물, 건강, 친구…)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마음 비울 수 있어야할 것이다.

그 모든 가치들보다 가장 앞자리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 주님, 구세주를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갈 수 있어야만 「나를 누구냐?」라고 묻는 질문에 「나 이런 사람입니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삶이 가난한 이들, 도움이 필요한 이들, 하느님 사랑이 필요한 곳에 나누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삶을 살기를 요구하고 있다. 남아서, 흘러 넘쳐서가 아니라 세상에 오시는 분, 구세주가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을 나누자는 것이다. 작은 정성이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누어져야 한다.

내 안에 많은 것을 담아 두어서는, 내 안에 담아 둔 것을 내 것이기 때문에 나만을 위해 사용한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가진 재능을 나를 위해서만 사용해야 한다고 이기적인 생각에 머물게 되면 이미 내 안에 가득 찬 욕심들 때문에 빈자리가 없다.

빈자리가 없는 곳에는 더 채워질 수가 없다. 이미 내 안에 너무 많은 것들로 가득 차 있다면 충분히 비우자. 비우는 것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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