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당하는 괴로움 중의 하나가 믿지 못하는 일일 것이다.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의 일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관심을 멀리 할 수도 있겠지만 추호도 의심을 가져서는 안 되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느끼는 감정이 믿지 못하는 것이라면 이는 대단히 괴로운 일이다.

세상 사람들의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아픔 중의 하나가 서로 믿지 못하는 것이다. 또 한 번 신의를 잃으면 회복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믿지 못하는 사람 자신이 더 힘들고 더 괴롭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제대로 믿고 신뢰하는 일을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 사람이 있는데 바로 그가 요셉이다.

경위를 살펴보자.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있었는데 그가 임신을 하였다. 뭐라고 해석을 해야 하는가? 나와는 잠자리를 같이 하지도 않았는데…. 그런데 아이를 가졌다면 결과는 뻔한 일이다. 그러면 두 사람의 약속도 뻔한 결론에 다다른다. 결혼은 없었던 일로 하자. 고소 안 하는 것, 위자료 안 무는 것만으로 다행인줄 알아라. 뭐 이런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보편적인 의심과 결론에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고 전한다.(마태 1,18-24)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별 희한한 꿈도 다 있네. 그 꿈을 나보고 믿으라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요셉이 취한 행동은 큰 교훈이자 참된 신앙의 모범이 되고 있다.

사람들은 참 많은 것을 계산한다.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신앙생활도 이리저리 내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신자가 아닌 사람처럼 행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봉사를 해도 그게 나에게 어떤 이익이 되는가 따져 보아야 하고, 누가 얼마나 알아줄 것인가에 대해서도, 얼마나 힘든 수고를 해야 하는가도 따져봐야 한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거나 못마땅한 일이라도 생기면 이 기회를 절대로 놓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기도 하고, 남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누구는 필요이상으로 관심을 받고 누구는 더 해야 하는데 안 한다고 푸념하기도 하고, 나는 왜 사랑과 관심에서 멀어져 있을까 하고 속상해하고 원망하기도 한다.

그렇게 세상의 기준에만 머물러 있다면 참된 믿음의 기회가 와도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말 것이다.
그런 마음 안에, 그런 삶의 태도에는 예수님이 자리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순수한 마음, 어린이와 같은 마음, 남의 허물을 덮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 힘겨워하고 어려워하는 이웃들과 마음으로부터 함께 하는 사람, 스스로 움직이기를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따뜻이 다가가는 사람,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사랑을 잘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 그들이 예수님을 모시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요셉의 순수한 마음, 하느님께 대한 순명의 신앙. 그것이 인류 구원의 초석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길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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