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시 한민족통일안보문제연구소장

오는 6월 25일은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한지 68주년이 되는 날이다. 본 칼럼은 전후세대에게 6.25전쟁이 주는 교훈을 일깨우기 위해 이 전쟁의 실체를 정확히 조명하기 위해 기고한 것이다.
몇 년 전 정부가 6.25를 앞두고 전국 중·고등학생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중·고생 절반이상이 6·25 전쟁의 발발 연도와 남침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결과가 발표되어 충격을 준 바 있다.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지고 국가발전을 담당해야 할 청소년들이 현대 한국사의 대비극인 ‘6·25김일성남침전쟁’에 대해 정확히 모르고 있다는 것은 정말 우려스러운 일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북한 김정은에게 굴종하는 세력들의 6·25 한국전쟁에 대한 인식이다. 이들은 북한당국이 날조한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여, 6·25 한국전쟁을 한국과 미국이 야합하여 도발한 북침전쟁이며, 이에 대항한 정의의 조국해방전쟁이라고 정당화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검인정 중·고교 역사교과서에서는 6·25 전쟁의 책임이 남북 모두에 있다는 식으로 서술함으로써, 좌파 수정주의 사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정말 한심하고 우려스러운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5시에 38도선 전역에서 기습 남침했다. 이보다 앞서 서쪽 옹진반도에 대한 포격명령은 새벽 4시에 내렸다. 이로써 남침전쟁을 시작해 개성, 동두천, 포천, 춘천, 주문진으로 확대됐다. 38선 전역에 걸쳐 30분 동안 먼저 포사격을 한 다음 공격해 들어왔다. 남침 루트는 옹진반도 외에 3방향이었다. 제1 접근로는 서부전선 개성∼문산∼의정부를 거쳐 서울로 진입하는 코스였다. 제2 접근로는 중부전선 철원∼포천을 거쳐 의정부로 들어오는 방향이었고, 제3 접근로는 춘천∼가평을 거쳐 경기도 이천으로 돌아 서울로 들어오는 코스였다.

옹진반도는 국군 제17독립연대(연대장 백인엽 대령)가 방어하고 있었다. 이 지역은 평소에도 가끔 교전이 있었던 곳이다. 24일 밤에도 2∼3시쯤 작은 포격이 있었는데 새벽 4시가 되자 북은 30여 분 동안 엄청난 양의 화력을 집중적으로 퍼부었다. 그러다가 5시가 되자 38선 전역에서 공격준비사격이 있고, 30분쯤 지나 일제히 38선을 넘어 남으로 쳐내려왔다. 전면전이 시작된 것이다. 북한의 남침사실은 아무리 은폐해도 증거는 많다.

첫째, 6·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발발된 명백한 침략전쟁이다. 이러한 사실은 ① 전쟁 중에 노획된 북한군의 ‘선제타격작전계획’이란 비밀문서 ② 전쟁포로들의 증언 ③ 총사령부가 사단에 내린 정찰명령 1호(1950. 6. 18)와 전투명령 1호(1950. 6. 22)가 있으며, ④ 특히 1990년 소련 기밀문서가 공개되면서 김일성의 ‘남침’사실이 밝혀졌고, 한국과 미국의 자료 등에서도 입증되었지만, 공산권 붕괴 이후 밝혀진 구(舊) 소련의 비밀자료 등에서 명백히 확인되었다.

이는 1992년 러시아를 방문한 김영삼 대통령에게 옐친(Boris N. Yeltsin) 대통령이 제공한 6·25 전쟁 관련 비밀문서에는 “김일성의 요청을 스탈린(Joseph V. Stalin)이 승인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내용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또한 흐루스쵸프 전(前) 소련공산당 서기장 회고록에서도 확인된다. 1994년 옐친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 이후 러시아 교과서에 「6.25전쟁은 북한의 의한 남침」이라고 분명히 명시했다. 또 후르시초프의 회고록, 유성철, 이상조의 증언 등 수없이 많다.

결국 구 소련 비밀문서의 공개에 따라 북침설, 좌파 수정주의 학자들의 전쟁유도설, 내란확전설 등은 명백한 사실(fact) 왜곡이고, 역사조작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둘째, 3년 1개월에 걸친 ‘6.25김일성남침전쟁’으로 45%에 이르는 공업 시설이 파괴되는 등 한반도 전체가 폐허화됐고, 민간인 인명피해는 2,490,968명(한국 990,968명, 사망 244,663명, 학살 128,936명, 부상 229,625명, 납치 84,532명, 행방불명 303,212명, 북측 1,500,000명)과 피난민(320만여 명), 전쟁미망인(30만여 명), 전쟁고아(10만여 명)를 양산시켰다.

​​북한군은 점령기간 중에 군인, 경찰과 그들 가족, 우익인사, 지식인, 종교인 등 양민 13만 명을 학살하였으며, 우리 대한민국 청소년 40여만 명을 의용군으로 징집하여 형제에게 총부리를 겨누게 하는 동족상잔의 만행을 저질렀다.

한국군 및 유엔군의 인명피해는 전사 178,569명, 부상555,022명, 실종 28,611명, 포로 14,158명으로 무려 총 776,360명에 달한다. 이러한 엄청난 인명피해가 북한의 남침전쟁에 의해 발생한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셋째, 소련의 지원에 의한 북한군의 기습남침과 중국군의 참전으로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려 공산화의 직전상황에서 우리 대한민국이 기사회생한 것은 바로 미군과 유엔군의 신속한 참전과 적극적인 지원 때문이었다. 당시 미군 등 유엔참전국 용사 4만여 명(미군 36,940명)이 전사하였으며, 부상, 실종자까지 무려 154,881명의 인명피해를 입었다.

우리는 ‘6·25 김일성남침전쟁’에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희생한 국군장병들과 우리 대한민국을 지켜주기 위해 싸우다 희생당한 미군 및 참전 유엔군들에게 머리 숙여 애도와 경의를 표하고,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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