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융스님

‘인생이 뭐 별거 있나. 연극 무대 위에 걸판지게 한 판 놀다가는 거이 인생이여!’
그대들은 사바세계(인간세상)를 무대로 멋지게 연기하기 바란다고 경봉선사가 일갈(一喝)했다.

각자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내가 누구인가’를 망각하고 이리저리 세파에 끌려 다니면서 참 자아의 정체성 없는 엑스트라로 살지 말고 자신의 본성을 바로 알고 생사해탈을 넘나드는 주인공으로 한바탕 멋지게 사는 삶이 되라고 던진 화두(話頭)다.

선사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양산통도사를 중심으로 한국불교계에 많은 업적을 남기기도 했는데 특히 세 번 웃는다는 삼소굴(三笑窟)에서 입멸(入滅)할 때까지 선풍을 일으키며 시(詩)서(書)화(畵)의 삼절(三絶)과 차(茶)와 선(禪)을 더하여 오절(五絶)들 넘나드는 선객으로 유명한 스님이다.

불교의 최고 수행 목적이 생사해탈(生死解脫)이다.
우리 인간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보니 늘 욕심(貪), 화냄(瞋), 어리석음(癡)의 번뇌(苦)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무명의 사바세계가 연극무대다.

이러한 무대 위에서 몸과 마음의 괴로움(苦)인 원인(因)과 괴로움의 일어남(緣)과 그 결과(果)를 깨어서 챙기는 진리(法)인 연기법(緣起法)을 확철히 깨닫게 되면 늘 마음이 번뇌(苦)에서 벗어나 성성적적(惺惺寂寂)한 삶이 된다.

즉 바른 앎(通察)이 되면 생사에 걸림 없는 대 자유인이 되고 삶의 무대 위에서 여여(如如)한 생사해탈의 주인공으로 한바탕 멋진 놀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네 삶이 그렇게 주인공인 삶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을까?

여기 의미 있는 시 한 편을 읽어보자.
‘세탁소에 갓 들어온 새 옷걸이에게 헌 옷걸이가 한마디 합니다.
<너는 옷걸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기를 바란다.>
그러자, 새 옷걸이가 헌 옷걸이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왜 옷걸이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시는 지요?>
헌 옷걸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잠깐씩 입혀지는 옷이 자기의 신분인양 오만해지는 옷걸이들을 그동안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정채봉시인의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중에

옷걸이의 본분은 옷을 걸고 벗는 것인데 걸쳐진 옷이 자신으로 착각하며 본래 자성을 잃어버리지 말 것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의 삶에서도 생사나 직위, 이름, 권력, 명예는 모두가 잠시 입고 벗는 옷과 같은 것인데 자칫 옷처럼 외부적인 겉모습이 자신으로 착각하는 살림살이가 아닌지를 늘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그러한 착각이 번뇌의 시작인 어리석음과 화, 탐욕인 탐진치(貪嗔痴)이며 엑스트라의 삶인 것이다.
아무리 외부의 환경이 바꿔도 정견과 지혜로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늘 지금을 깨어서 살아가는 여실지견(如悉知見)할 때 착각에서 벗어난 참 주인공의 삶이 멋진 한바탕 연극이라는 것이다.

삶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있지 않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임을 알아차림하며 경봉선사의 말처럼 굿 한판 걸판지게 놀다가는 인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通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