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형 사회복지법인 경영인·전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

포항시 기계면은 신라의 서울이었던 경주의 북촌(北村)이었다. ‘삼국사기지리지(三國史記地理誌)’에 따르면, 기계(杞溪)는 원래 신라의 모혜현((毛兮縣) 또는 화계현(化鷄 縣)으로 불렸는데, 경덕왕(景德王) 때 지금의 이름인 기계현((杞溪縣)으로 이름을 고쳤다. 이러한 연유로 기계면(기북면 포함)에는 신라·고려시대와 관련된 이야기가 심심찮게 전해 내려온다. 예를 들면 신라시대 기계현(杞溪縣)에는 ‘손얼벌’이라는 울창한 솔숲(현재 기북면 용기리 소재)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신라의 화랑도(花郞徒)들이 말을 타고 심신을 연마하였다고 전한다. 그리고 기계면에는 매우 귀중한 신라·고려시대 이야기와 역사적 유적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이름하야 ‘삼태사 묘소’이다.

기계 삼태사(三太師)는 유삼재(兪三宰), 윤신달(尹莘達), 신몽삼(辛夢森) 3분의 태사를 일컫는다. 태사(太師)는 고려시대 정일품(正一品)의 벼슬로 임금의 고문 구실을 하는 국가 최고의 명예직이었던 삼사<三師 : 태사(太師)·태부(太傅)·태보(太保)> 중에서도 가장 높은 직위였다. 태사(太師)는 고려시대 왕자의 부마(駙馬)나 비부(妃父) 등의 종실(宗室)과 공신 및 고위 관원에게 내렸던 벼슬이다. 현재 유태사 묘는 기계면 미현리, 윤태사 묘는 기계면 봉계리. 신태사 묘는 기계면 화봉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 묘소 모두 풍수지리상 명당(明堂)으로 소문이 나있어 풍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태사 유삼재(兪三宰)는 기계유씨(杞溪兪氏)의 시조(始祖)로 신라시대 육두품이 오를 수 있었던 최고의 관등인 아찬((阿粲) 벼슬을 지냈다. 신라가 쇠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후손인 유의신(兪義臣)이 고려에 투항하지 아니하자 왕건(王建)이 그를 기계 호장(戶長)으로 삼으니, 그의 후손들이 기계를 본관으로 칭관(稱貫)하게 되었다. 유태사 묘역에는 숙종 15년(1689년)에 세운 부운재(富雲齎)가 자리하고 있으며, 유태사 신도비도 세워져 있다. 신도비(神道碑)란 높은 관직을 지낸 사람의 공적을 흠모하는 뜻을 담아 무덤 근처에 세우는 공덕비를 말한다. 유태사 묘는 비학산(飛鶴山)을 주산으로 하고 자좌오향(子坐午向)으로 위치하고 있는 명당(明堂)으로 알려져 있다.

태사 윤신달(尹莘達)은 파평윤씨(坡平尹氏)의 시조로 918년 신숭겸, 홍유 등과 더불어 궁예(弓裔)를 축출하고 왕건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한 고려 건국공신이다. 왕건은 고려건국에 대한 공로로 윤신달 장군에게 2등 공신을 책훈하고,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의 관직을 내렸다. 태사 윤신달 묘역에는 묘소를 관리하기 위해 조선 영조 때 건립한 봉강재(鳳岡齋)가 위치하고 있으며, 봉강서원(鳳岡書院) 자리에 유허비(遺墟碑)도 세워져 있다. 봉강재는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구조재의 짜임새가 세심하게 이루어진 뛰어난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봉좌산(鳳座山)의 좌측, 즉 봉황의 왼쪽 날개에 위치한 윤태사 묘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명당으로 알려진다.

태사 신몽삼(辛夢森, 1166~미상)은 영산·영월신씨(靈山·盈月辛氏)의 시조인 신경(辛鏡)의 4세손으로 고려 명종 19년(1189년)에 급제하여 보문각(寶文閣) 대제학(大提學) 검교(檢校) 태사(太師) 영원부원군(靈元府院君)에 올랐다. 무오년(戊午年 1918년)에 지석(誌石)이 발견(發見) 되었는데, 지석(誌石) 전면(前面)의 내용이 태사 영주 신공 몽삼 지묘(太師 寧州 辛公 夢森 之墓), 배위(拜位)에 정부인 문주류씨(貞夫人 文州柳氏)라 기록되어 있고, 후면에 기계현(杞溪縣) 북(北) 화봉동(禾峰洞) 오리(五里) 재목곡(梓木谷) 소재(所在) 자좌(子坐) 오향(午向) 경양(景陽) 4년 9월 ?일(日)이란 해자(垓字)가 적혀 있었다. 태사 신몽삼의 묘소는 오리가 알을 품는 ‘금압포란형(金鴨抱卵形)’으로 알려져 있다.

기계면에 신라·고려시대 유적인 삼태사의 묘가 실존하고 있고, 이 중 두 분이 기계유씨(杞溪兪氏)와 파평윤씨(坡平尹氏)의 시조(始祖)라는 귀중한 역사적 사실(史實)은 기계(杞溪)는 물론 포항의 자랑이요 뿌듯한 자긍심이 아닐 수 없다. 민족의 뿌리를 찾아 역사적 유적을 발굴하고 이를 길이 보존하여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은 우리 세대가 해야 할 막중한 의무이자 책임이다. 이를 위해 기계면 소재지에 삼태사 유적을 찾는 사람들에게 역사의 산 교육장 역할을 할 수 있는 테마박물관을 설립할 것을 제안한다. 이곳 테마박물관에는 기계 삼태사(三太師)의 유래, 신라·고려 관직에 대한 이해, 삼태사 묘소 유적 자료 및 풍수지리 해설, 기계유씨와 파평윤씨의 성씨 유래 등을 주제로 재미있고 유익한 테마를 구성하여 후세에 널리 알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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