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태 편집국장

장마가 지나가고 초복이 지난 지금 부글부글 끓는 용광로 더위입니다. 한 해의 반이 지나갔다는 게 아직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여전히 쌓인 업무량에 치이고, 피곤한 일상 속에서 온몸으로 잘 버티고 계시는지요.

​무더위 속에 그나마 여름휴가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휴가를 떠나는 이웃들 모두가 제대로 쉬고 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간밤에는 피곤해서 일찍 자리에 들었습니다. 눈을 뜨니 3시 반이었습니다. 불을 켜고 앉아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여든 여덟 해를 살아온 김욱 작가의 책 (삶의 끝이 오니 보이는 것들)을 읽다보니 5시가 되었습니다.

교복을 주섬주섬 걸치고 집을 나섭니다. 부학산을 오르는 이웃들은 등산복을 교복이라고 부릅니다. 산에서 만나는 이웃에게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건넵니다.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첫 봉우리에 올라 시가지를 내려다봅니다. 도시는 회색안개에 포위되어 있습니다.

숲속 솔바람이 살랑살랑 부는데도 땀이 많이 흐릅니다. 기온은 기온대로 습도는 습도대로 높은 날이지만 자연의 이치는 거스를 수가 없으니 즐길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언젠가 자신의 손으로 성취한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부와 명예, 가족 등, 최종에는 하나 뿐인 생명까지도 잃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두려움이 크게 느껴집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이지요. 잘못 살아온 삶의 허물이 머릿속을 쉽게 떠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또한 잊혀질 것입니다. 나라는 하나의 존재마저도 사라질 것이니까요.

​도시를 에워쌓던 안개는 영일만 햇살에 자리를 내주고, 부학산 솔숲의 매미와 까치의 합창은 오늘도 변함이 없습니다. 상쾌해지는 머릿속, 자연과 하나 되는 일체감을 느낍니다.



숲을 걸어가면서도

숲의 모양을 알 수 없다.

인생을 살면서도

심오하고 오묘한 인생을 알 수 없다.

인생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삶의 기록을 남겨야 한다.

그것만이,

진정 살아있었다는 인생의 증거다.


- ‘인생을 알려면’


걸어가면서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을 잡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산의 넉넉함에 감사하며 오늘은 여기서 마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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