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다양성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자유와 같은 기본적 권리가 모든 사람에게 보장된다는 전제 아래 구체적인 권리와 의무가 특정한 방식(다수결, 여론 등)에 의해 할당된다. 또 인간의 삶의 영역을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으로 구분해서 사적인 영역은 개인들의 자치에 맡긴다(사적 자치). 민주주의 아래에서 양심의 갈등과 대립은 이런 원칙을 근간으로 해서 해결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보편적 인간의 가치를 추구하고 존중한다. 그래서 사적 자치에 맡겨진 부분일지라도 보편적 인간 가치를 훼손할 경우에는 간섭을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공적 영역에서 민주적 의사 결정에 의한 것일지라도 보편적 인간 가치를 침해하는 경우에는 그 결정은 부정된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결정이 부정될 수 있는가. 이런 점들이 민주주의의 딜레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양심적 병역 거부는 자신의 정치적, 종교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병역의 의무를 거부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이에 대해 찬성론자들은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실질적으로 안보에 위협이 되는 요소가 사라진 상황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대체복무제’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반대론자들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 병역 의무는 반드시 준수해야 하며, 양심의 자유도 법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병역이 공적인 영역이라면, 이를 거부하는 특정한 신앙과 가치관은 기존의 도식에 따르면 사적인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공동체성을 우선시한다면, 즉 공적 영역의 우선성을 주장한다면 병역 거부는 병역 기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보편적 인간 가치를 고려한다면 병역 거부는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 병역 거부는 인류의 평화를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분은 단순한 이분법이며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오늘날 공동체의 구성원들 간에 유일하게 공유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권리와 의무 할당의 형평성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이 형평성 때문에 병역을 마치려고 하는데, 특정한 양심을 가진 사람이 병역을 거부할 경우, 이러한 이분법은 마치 선악을 갈라놓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국제적 위상을 어느 정도 갖췄다. 이를 고려한다면 인권문제를 국내법 체계에서만 판단하기 보다는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때도 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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