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눈이 의심스러웠다. 시의 부탁으로 자문도 심사도 참여하면서 착공일이 궁금해 가끔 '울산시립미술관'소식을 검색 중 '전면재검토'라는 기사를 보았다. "어 잘못 보았나?" 그런데 실화였다. 그래서 부족한 소장품을 개관을 미루어서라도 확보하려는 것 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유는 새롭게 선출된 송철호 시장의 인수위원회격인 시민소통위원회의 문화예술분과가 건의한 것으로 "시립미술관 건립 추진과정에서 충분한 여론수렴이 부족했고, 민선 7기 시정철학이 담긴 미술관 건립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면 보류, 재검토의 이유였다.

이유가 여론수렴부족이라니? 그럼 2010년 미술관 건립계획이 처음 나온 이래 지금까지 9년간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미술관건립을 담당했던 공무원들이 모두 놀고 먹은 것인가. 전면재검토하고 백지화하려면 이 일을 담당했던 공무원들부터 모두 징계하고 지금까지 들어간 약 150억의 매몰비용도 배상을 하도록 하는 것이 순서 아닐까. 인수위원들이 원하는 여론이 무엇인지 모르나 시는 이미 미술관을 건립한 여러 도시의 시행착오를 반면교사 삼아 꽤 오랜 시간 미술관건립을 검토하고, 여론을 듣고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면서 최선의 안을 마련했다.

그런데 더더욱 황당한 건 미술관을 "시정철학을 담는 그릇"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시장 바뀔 때마다 시정철학을 담자고 미술관을 부수고 짓고 해야 한 단 말인가. 국립중앙박물관은 김영삼 정부에서 계획해 김대중 정부를 거쳐 노무현대통령이 개관했다. '시정철학'보다 더 엄중한 '국정철학'을 담겠다고 어느 한 대통령이라도 나서거나 아니 인수위원들이 알랑방귀를 뀌었다면 아직도 우리민족의 정신문화와 예술의 중심이자 정점인 국립중앙박물관은 변방을 떠돌고 있을게다.
사실 대한민국의 지도층 또는 식자연하는 이, 또 교양인을 표방하는 사람들의 거개가 불행하게도 박물관과 미술관, 화랑과 전시관을 구분할 줄 모른다. 게다가 그림도 수준이나 내용 또는 미학적 가치는 논외로 하고 액자에 들어 벽에 걸리면 모두 미술품이라 여긴다. 사실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설립 운영하는 박물관이 388개관, 미술관이 57개소에 이른다. 그런데 이들 미술관중 변변한 소장품은 커녕 예산도 부족해 건물만 가지고 개관이래 의미 있는 전시조차 한 번 못한 곳이 수두룩하다. 다 이런 천박한 인식 탓이다.

미술관은 미술박물관의 준말로 박물관에는 동물원 식물원 과학관도 포함된다. 미술관은 시민을 교육하는 실용적 장소지만 한편으론 보물 같은 미술품을 보존하는 신전이기도하다. 그리고 세상의 박물관은 예술적, 문화적, 과학적으로 중요한 유물과 작품, 사물들을 수집, 보존, 해석해서 전시를 통해 교육하는 곳이다. 정치, 종교적 입장과 신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어 정치와 경제로부터 일체의 간섭이 있어서는 안되는 중성적 공간이다. 또 예술과 표현,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야 하는 공간이다. 미술관 박물관은 예술품의 절대가치인 아우라(Aura)를 지닌 진품을 소장하고 이를 통해 시민들에게 무형의 정신적 공감대를 제공해 지역사회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주어 도시공동체를 결속시키며 문화적 공동체라는 일체감을 통해 애향심, 애국심을 고양하는 기관이다. 이런 엄중한 기관에 시정철학을 담으면 시정철학과 다른 작품과 작가들은 배제될 것이 뻔하다. 생각이 다른 이들의 표현과 예술과 사상의 자유의 제한을 의미한다. 마치 1930년대 히틀러가 인민의 건전한 정신을 해친다며 모더니즘미술 즉 마티스, 피카소를 비롯해 반 고흐, 렘브란트까지 '퇴폐예술'로 규정해 작품을 압류하고 불태우고 작가들을 추방했던 것과 다를 바 없다.

시정철학이 21세기 울산의 분서갱유로 기록될까 두렵다. 미술관은 구도심의 활성화 또는 상권을 살리는 정도의 용도를 넘어 정신과 철학, 문화를 통해 문명공동체를 키워나가는 곳이다. 부디 미술관은 법 이전에 상식과 학문적 원칙에 맞는 제대로 된 미술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위임받은 권불4년의 권력으로 무조건 뒤집고 거꾸로 하는 청개구리식 혁신의 적폐를 벗고, 이제라도 잘 한 것은 이어받아 더 잘하려고 하는 것이 진정한 혁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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