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태 편집국장

올 여름은 유별나게 무덥다. 계속되는 폭염과 열대야로 일상이 무기력해지고 퇴근해서 집에 들어서면 파김치가 된다. 열대야는 오후 6시 1분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밤사이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인 현상을 가리킨다. 지난 2013년에는 올해보다 더한‘초열대야’가 지속된 적이 있었다.

초열대야는 “전날 저녁 오후 6시 1분부터 당일 오전 9시까지 최저기온이 30도 이상인 날" 을 의미하며, 국내에선 1951년 8월 20일 광주에서 29.8도를 기록한 이래 단 한 번도 30도를 넘은 적이 없어 ‘초열대야’라는 용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낮에 태양복사로부터 받은 열이 지구 밖으로 방출되지 않고 대기 중에 그대로 남아 밤에 대기의 온도가 내려가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하니, 지구온난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두말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에서는 16살 정도로 추정되는 북극곰이 가죽과 뼈만 남은 아사 상태로 발견됐다. 세계자연보전연맹은 기후변화로 북극해의 얼음이 빠른 속도로 감소하면서 북극곰이 45년 안에 절반 가까이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기후변화는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실내에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고, 한낮에 노상를 걸으면 아스팔트의 열기로 쓰러질 것 같은 현기증을 느낀 것이 벌써 20여 일이 되었다. 폭염 장기화로 경북에서는 농·축·수산물 피해가 늘고 있다.

지난 4일 현재 경북은 폭염에 따른 가축 피해가 42만6천909마리로 나타났으며, 지난달까지 발생하지 않은 어류 피해는 이달 들어 동해안 고수온이 지속하면서 늘고 있다고 한다.

포항과 영덕 양식장 14곳에서 넙치와 강도다리 1만9천200여 마리가 죽었다. 경주에서는 우렁쉥이 25줄(1줄 100m)에서 피해가 났다. 온열 질환 사망자는 8명, 온열 질환자는 224명이나 되었다는 뉴스도 나왔다.

폭염특보가 발령된 전국에는 무더위 속에서 일하다가 소중한 목숨을 잃은 사건과 함께 가축과 양식어류들이 집단 폐사하는 일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정부에서도 대책 마련에 고심하면서, 기업과 국민들에게 절전과 폭염 예방에 동참토록 호소하고 있다.

난리가 따로 없다. 농부들은 가뭄 때문에 농작물이 다 말라가고, 어민들은 적조 때문에 어류들이 모두 떼죽음을 당하고, 이런 광경을 바라보는 농어민의 가슴은 바싹바싹 타들어간다. 농어민들의 아픔을 생각하니, 내가 나서서 기우제라도 올리고 싶은 심정이다. 재래시장에서는 상인들이 울상이다. 날씨가 덥다보니 손님들의 발걸음이 뚝 끊겼다고 힘들어 한다.

사람들의 정신도 살짝 궤도를 이탈하여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열대야 현상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잔 운전자들은 졸음과 싸우며 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낸다. 게다가 사소한 일로 벌어진 말다툼이 폭행과 살인으로 번지는 웃지못할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 그야말로 무더위가 사람을 잡는 형국이다.

무더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냉방기를 틀어야 하고, 냉방기는 프레온 가스를 방출함으로써 지구온난화현상과 같은 자연재앙을 일으키는 모순된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냉방기가 없었던 과거에 선인들은 무더위를 어떻게 식혔던가.

고려 때 문인 이인로는 '탁족부(濯足賦)' 에서 '돌 위에 앉아/두 다리 드러내고 발을 담그니/불같은 더위가 저멀리 가네' 라며 시원함을 노래했다. 우리의 선조들은 개천에서 천렵으로 잡은 물고기로 어죽을 끓여 먹으며 이열치열로 보내며, 밤이 되면 죽부인을 끌어안고 무더위를 물리쳤다.

다산(茶山) 정약용은 무더위를 식히는 방법, '소서팔사(消暑八事)'라는 시를 지었다. 소나무 숲에서 활쏘기,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네타기, 빈 누각에서 투호놀이 하기, 대자리에서 바둑 두기, 서쪽 연못의 연꽃 구경하기, 동쪽 숲에서 매미 소리 듣기, 비 오는 날 시 짓기, 달밤에 발 씻기가 무더위를 보내는 피서였다. 일상에서 자연을 즐기면서 더위를 식혔다. 여유와 멋이 넘치는 멋진 피서법이라 부럽기만하다.

무더위가 다가기 전인 지금부터라도 다산의 피서법인 소서팔사(消暑八事)나 실천에 옮겨볼까?
그런데 그늘에서 '대자리에서 바둑 두기'는 상대가 있어야 하는 데 어떡하나.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뜨거운 밤이 잠시 달아나서 더운 줄 모르겠다.

전력대란 막기에 동참해 선풍기 1대로‘열대야’에 매일 밤을 새우고, 한낮이면 빨래더미처럼 축쳐져서 보내는 날들이 계속 된다.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 이런 무더위를 겪어보는 것도 후일 두고두고 이야기 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후일담이야 어떻든 간에 무더위가 눈앞에서 당장 사라져, 생업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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