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다우닝가 1번지, 총리 관저 앞에는 방공호를 파고, 방독면을 준비하던 수많은 시민들이 일손을 놓고 총리 체임벌린(Chamberlain)을 연호하면서 흥분하고 있었다. 그때 흰 종이 한 장을 흔들면서 나타난 체임벌린은 이제 유럽은 오직 평화만이 있을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938년 9월 30일, 전 세계의 이목을 끌던 이 종이 한 장은, 독일 뮌헨에서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 수테텐란드(Sudetenland)를 아돌프 히틀러에게 넘겨주는 대가로 유럽의 평화를 보장받은 굴욕적 ‘평화 선언서’였다.
체임벌린은 히틀러를 이렇게 평하였다. “나는 히틀러에게서 한 번 약속 하면 믿을 수 있는 사나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고 하였다. 요즘 많이 듣는 소리 같다.

전쟁의 공포에 떨던 영국 국민들은 체임벌린을 개선장군처럼 환영하였다. 이 선언서가 세계 평화의 조종이라는 사실을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윈스턴 처칠은 말도 되지 않는 작태라고 비난하였다.

독재자 히틀러의 위장평화 공세에 마취되어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영국 국민들은, 전쟁준비만이 오직 살길이라고 외치는 처칠을 전쟁광이라고 매도하고 비판하였으니 오늘 한국의 현실도 역사의 아이러니가 반복되는 것은 아닌가?

불행의 씨앗은 오래가지 않았다. 평화선언조약 체결로부터 1년, 1939년 9월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을 올리면서 질풍노도와 같이 북유럽을 석권하고 러시아로 진격하였다.

체임벌린은 애국심이 없고, 국가 보위에 대한 신념이 없고, 국제정세의 판단력이 없어서 히틀러의 간계에 넘어갔을까? 아니다. 그는 전쟁만은 피해야 한다는 확정 편향(確定 偏向)에 사로잡혀 히틀러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였기에 영국 역사상 가장 멍청한 총리로 평가되어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만약 나치의 군비 확장과 히틀러의 야심을 일찍 간파하고 영국은 어떤 적의 침공이 있어도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국방력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총력안보의 국민적 의지가 확고하다는 결기를 펼쳤더라면 히틀러는 감히 전쟁을 생각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필자는 지난 1월 15일, 대경일보 ‘伯山시론’에서 국가 간의 ‘조약’이나 ‘협정’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국제정치학적 실례를 들어 낱낱이 적시하여 글을 썼다.

그 연장선상에서 보면 4.27 남북정상회담 후 우리의 대북정책은 짝사랑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우리의 선의를 진정으로 받아들이는지 의심스러우며 때로는 문 대통령을 훈시하는 작태까지 공공연하게 연출하고 있다.

그럼에도 청와대나 통일부의 성명은 이제 전쟁의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으니 우리 국민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하느냐?

필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가 사랑과 국민 사랑에 추호도 이의를 갖지 않고 있지 않지만, 대통령의 대북한 문제에 있어 ‘확정 편향’은 도가 지나치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정부의 국방정책을 보면 태평성세가 도래했나 하는 착각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나라를 지키는 국방력은 강하면 강할수록 국민은 정부를 신뢰하게 되고 그 신뢰는 국력 신장에 큰 뒷받침이 되어 부국의 지름길이 된다.

군대는 전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평화를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감히 어떤 국가도 침범할 수 없는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군대가 존재하고 있을 때, 가장 완벽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강철은 불에 달구고 물에 식히고 망치로 수없이 두드려서 만들어낸다. 군대도 마찬가지다. 강한 군대는 혹독한 훈련을 통하여 만들어낸다. 지속적이고 항구적인 고강도 훈련만이 국가와 국민의 생존을 책임질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어느 선상에 있는가?

울지프리덤가디언(UFG)·키리졸브 등 한미 연합훈련은 물론 독수리훈련을 비롯한 태극연습 등 한국군 단독훈련까지 모두 중지하였다. 심지어 북한의 한마디가 떨어지자 군사분계선 인근 정찰 활동까지도 중지할 뿐 아니라 중거리 지대공미사일 철매-2(천궁 블록 Ⅱ) 사업 중단, 주력 전차 흑표(K-2)도 내년 구매 계획이 중단상태이며, 특임여단(참수부대)의 전투력 증강 주력인 헬기사업도 중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역사에서 외침으로 일어난 전쟁이 931번으로 기록되어 있다. 국방력 강화는 비단 북한과 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변의 강대국인 중국 일본 러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대만까지도 군사력 증강에 사활을 걸고 있다.

힘이 약하면 당하기 마련이다. 문 대통령에 대한 중국의 무례와 오만을 보지 않았던가! 우리는 말 한마디 못하고 굴복하였다. 힘이 없으면 당하기 마련이다. 힘의 원천인 국방력 증강은 통일 후에도 지켜가야 할 명제임에도 지금 우리는 무장해제에 수준에 와있다. 나치의 도발을 의식적으로 외면한 체임벌린의 행각을 교훈으로 되새겨 보아야 할 주요한 시점이 오늘 한국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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