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지난 5월,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백악관은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다.
백악관이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만든 기념주화에 사단이 났던 것. 미국 내 언론들은 물론 영국 언론들 마저 거센 비판이 일었다.

김정은의 불투명한 정상회담 태도로 정상회담 취소가 거론되는 판에 백악관이 발행한 기념주화가 김정은을 우상화했다는 이유다. 기념주화에는 김정은에 대해 '최고 지도자(Supreme Leader)'라는 호칭이 붙여졌다.

BBC는 보도에서 '보통은 국무위원장이라고 부른다'며 백악관을 은근히 조롱했다.
미국 CNN은 “김정은을 북한에서 부르듯이 최고 지도자로 칭했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고 날선 비판을 가했다.
 
로버트 켈리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트위터에서 “(기념주화가) 역겹다"고 했다.
또 “누구를 우상 숭배하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백악관은 '관례적으로 정상회담이 있으면 기념주화를 발행한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북한의 관영매체 조선중앙TV는 때를 틈타 '김정은 장군에게 전 세계가 매혹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북 정상회담으로 김정은의 주가는 치솟았고, 북한 매체들은 연일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소식들이 등장하고 있다.
지도자에 대한 우상화가 북한에서는 일상이라면 대한민국은 다를까. 2018년 1월 24일 문재인 대통령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미주 한인들이 트위터리안 오소리햅번의 주관 하에 뉴욕 타임스퀘어에 전광판 광고를 게재해 문 대통령 지지층과 반대층이 갑론을박을 벌인 일이 있었다.
 
국내 문재인 팬클럽은 3,000만 원을 모금해 지하철에 문재인 대통령 생일 축하 광고를 내걸었다.
이 문제로 속칭 '문빠'의 대모(代母)로 칭송받는 최민희 전 의원은 한 언론의 라디오 방송에서 이를 '우상화'라고 비판하는 중도 성향의 시사평론가와 신경질적인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보수 우파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도 없어 보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였던 2011년, TV조선은 개국 당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인터뷰에서 '박 대표를 보면 빛이 난다 형광등 100개쯤 키신 것 같다'라는 역대 최고의 찬란한(?) 헌사가 나왔다. 진행을 맡았던 박은주 기자의 멘트였다.
대한민국에서 정치는 바야흐로 '우상과 빠들'의 시대가 됐다. 노빠, 문빠, 박빠, 홍빠, 안빠...소위 '빠'들이 한국의 정치를 좌우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문화적 학술용어로 '팬덤(Fandom)'이라 불리는 이 '빠'의 원조는 70년대 공단에 불어닥친 여공들의 남진, 나훈아 팬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둘이야말로 진정한 '대한민국의 라이벌'이었다는 평가를 듣는다.

팬(Fan)과 영토(Dom)의 합성어인 팬덤은 글자 그대로 '팬들의 왕국'이라 할 수 있다. 가요계를 중심으로 그저 청소년들의 '오빠부대' 팬클럽 정도로 인식되었던 팬덤은 그러나 1990년대에 이르면 서태지와 아이들, HOT, 젝스키스, 신화, god 등 1세대 아이돌 스타들 팬덤 간에 헤게모니 투쟁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단순한 응원 조직을 넘어 서로가 서로를 상대로 누가 진정한 댄스 가요계의 황제인지 인터넷을 통한 설전과 비난의 전쟁이 시작되었던 것.
'적과 동지'라는 정치적인 것의 본질이 가요계 팬덤들 사이에 등장한 셈이다. 90년대의 이러한 연예계의 팬덤은 2002년 20~30대를 중심으로 '노사모'라는 집합적 열광(Collective effervescence)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집합적 열광'이란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이 현대 사회의 종교적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이다.
이는 '한 장소에 모인 사람들이 감정을 공동으로 체험하고 공동의 행동 속에 표현하면서 서로를 고무시키고 증폭시킴으로써 만들어낸, 개인으로 있을 때는 경험하기 어려운 예외적 힘을 갖는 강력한 흥분 상태'를 말한다.

뒤르켐의 이러한 설명은 2002년 월드컵 게임의 '붉은 악마'라는 한국 축구 팬덤이 여중생 미군 장갑차 사망사건의 선동과 결부되면서 이른바 '촛불집회'라는 의례(儀禮)로 등장했다는 가설에 힘을 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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