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태 편집국장

이른 새벽에 일어나 아무 생각 없이 주섬주섬 교복(등산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집을 나섭니다. 오늘도 부학산의 여름을 질펀히 즐긴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볍습니다.

남은 여름과 가을, 겨울도 질펀하게 즐기면서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계절이 주는 자연의 축복을 맘껏 누리면서 세상에 대한 미련과 후회 없이 자연의 품안으로 돌아간다면 최고로 행복한 삶을 산 것이 아닐까요?

부학산 입구에서 30분을 걸어 제1쉼터에 오는 동안 등산객은 보이지 않고 새소리, 꽃피는 소리, 산바람의 감촉만 느껴집니다. 남쪽하늘에는 축구공만한 보름달이 환하게 부학산을 비추고 있습니다.

솔 사이로 보이는 보름달을 보며 산새소리의 푹 빠져 인적 없는 한적한 숲길을 천천히 걷는 것도 참 좋습니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혼자만의 삼매의 경지에 빠져 걷는 산길, 여인의 가슴처럼 부드러운 산봉우리를 걷는 여유는 힘든 세상사의 시름을 잊게 합니다.

라디오를 들으며 아낙네 2명이 숲길을 따라 내려옵니다. 마주치며 반가운 인사를 나눕니다.

며칠째 오르는 산이지만 오를 때마다 다가오는 느낌은 많이 다릅니다. 오르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언제 그랬는가 싶을 때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봄이 여름에게 자리를 내주었듯이 내 몸도 계절의 변화를 빨리 받아들여야 하지만 왠지 반응이 느립니다.

6시에 제2체력단련장에 도착해 윗몸일으키기, 뜀뛰기, 철봉, 물구나무서기 운동을 하면서 굳은 근육을 풀어냅니다. 특히 솔바람을 맞으며 물구나무를 서서 바라보는 구름 하늘이 아름답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계속해서 굽은 숲속 길을 걷습니다. 신길은 감출 것은 감추고 보일 것은 보여 줍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아야 지혜로운 삶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3체력단련장에 이르니 ‘당신의 건강한 모습이 아름답습니다’는 표지판이 보입니다. 백퍼센트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사람은 건강해야 건전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 감독은 KBS1 ‘다큐공감’이란 프로에서 “자신이 대한민국을 뛰어 넘고, 세계로 가는 작품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영광과 좌절은 한 칼이 갖고 있는 양날의 칼이지만 자신을 위하여 멈춰선 안 된다.” 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인생은 덧없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따라서 나는 읽고, 걷고, 생각하며, 글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여기서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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