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법에 의한 지배를 주요 원리로 삼고 있다. 법치주의는 인간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를 막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한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인격자라 할지라도 이해관계가 얽힐 경우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권력과 권한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또 아무리 지식이 뛰어난 사람이라 해도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법에 의한 지배는 이런 가능성을 미연에 차단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법을 만들어 집행하고 그 정당성을 판단하는 일은 결국 인간이 한다. 만약 법치주의의 근본 동기가 인간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한 것이라면, 법치주의 원리 그 자체가 자의성과 불공정성을 완벽하게 배제해 주지 못한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법의 제정과 집행 과정에 자의성과 불공정성이 개입될 여지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법이 엄연함에도 이를 무시한 채 온갖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는 소위 지도층의 부도덕성은 법치주의를 철저하게 조롱하고 있다. 더 나아가 ‘방탄 국회’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온갖 구실을 붙여 법을 어긴 사람을 보호하고 정당화하는 일도 우리 사회에서는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법치주의 원리가 얼마든지 허울 좋은 장식품으로 전락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법치주의는 정치적으로 볼 때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독단과 방종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원천인 국민 일반의 정치적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또한 국민 일반의 인권을 억압하는 것이어서도 안 된다.

지금의 우리 현실을 보면, 법치주의 원리가 권력이나 우세한 힘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경우가 잦다. 자기의 유·불리에 따라 어느 때는 ‘법대로’를 외치고 어느 때는 법을 무시하는 ‘편의적 법치주의자’가 많다는 말이다. 최근 막바지에 임박한 드루킹 댓글 조작 수사를 보면서 법치주의의 위기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사회의 시민운동 혹은 시민 불복종은 본말의 전도 현상이나 편의적 법치주의에 대한 강력한 억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시민 사회의 새로운 흐름은 법치주의의 한계를 보완하여 민주주의의 내실을 기하는 촉매제로 자리 잡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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