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용 문화기획팀장·오스트리아 <2>

▲ 노란색 외관이 눈에 띄는 모차르트 생가. 게트라이데 거리 9번지에서 1756년 1월 27일 음악 신동이 태어났다.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음악은 시작된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는 편안하면서도 그의 개성이 드러나는 곡들을 작곡해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천재성과 독특한 성격은 후대에 많은 일화를 전하고 있는데, 그 시대의 유명인들과 맥락을 함께한다.

모차르트의 음악 인생은 3세에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누나 마리아 안나가 치던 하프시코드(피아노의 전신)소리를 듣고 그 곡을 완벽하게 외워 연주했다. 4세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으며 아버지의 친구인 궁정 오케스트라 단원을 대신해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6세가 된 모차르트는 독일 뮌헨에 가서 누나와 함께 초연을 했고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음악의 본고장인 빈으로 간 모차르트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왕실 중 하나였던 합스부르크 왕실에 초청됐다. 한 손으로 연주하거나 건반 위에 천을 덮고 연주하는 등 ‘신동’의 면모를 마음껏 뽐냈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자, 모차르트는 공주에게 청혼을 한다. 그 공주가 바로 프랑스 혁명과 함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마리 앙투아네트(1755∼1793)이다.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세계인의 가슴에 큰 울림을 준 괴테도 모차르트의 연주회를 봤다.
“내가 모차르트를 본 것은 그가 7세였을 때로 순회 연주회에서였다. 그때 나는 14세였는데 지금까지도 그때 그 어린 아이의 머리 모습이며, 칼 모양의 장식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괴테의 나이가 된 모차르트는 로마교황에게 작위와 훈장을 수여받는다. 교향곡 작곡에 전념한 모차르트는 18세에 뮌헨으로 돌아와 오페라를 완성, 성공해 여러 차례 재공연을 하고 사교계에서도 인기를 얻게 된다. 그는 다시 궁정음악가로 돌아가 바이올린 단원이 돼 다섯 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한다.

20세 성년이 된 모차르트는 인생의 변화기를 맞이한다. 자신의 오페라를 상연하던 궁정 극장이 문을 닫아 독일, 뮌헨, 파리 등을 떠돌아 다닌다. 어머니가 사망하자 모차르트는 자신의 고향인 잘츠부르크로 돌아간다. 그의 작품세계는 어느 때보다 견고해졌고,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를 탄생시키고 궁정실내작곡가의 칭호를 받는다. 또 3대 교향곡으로 평가받는 39, 40, 41번 교향곡을 차례로 작곡한다.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2세의 의뢰를 받고 오페라를 작곡하고 연주회를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지만 단명했다.

독자에게 묻는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중 누가 먼저 태어났을까?
모차르트의 전지작가인 오토 얀(Otto Jhan)은 두 거장의 만남을 일화를 전하고 있다. 베토벤의 나이 17살에 빈을 찾았을 때, 모차르트는 이미 음악계를 비롯한 유럽사회에 이름을 널리 떨치고 있었다. 베토벤은 두 번째 방문에 모차르트를 겨우 만날 수 있었다. 모차르트는 베토벤에게 주제 하나를 주고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느낌을 피아노 연주로 표현하라고 주문했다. 즉흥 연주라고 하기엔 정교한 구성과 완성도에 의심을 품은 모차르트는 작곡 중이던 '돈 조바니'의 주제 일부를 줬는데 베토벤의 연주를 들은 모차르트는 문을 나서며 이렇게 말했다. "저 젊은이를 눈여겨보게. 머지않아 세상을 향해 천둥을 울릴 날이 올 걸세."

음악의 도시 잘츠부르크를 여행하다 보면 한국의 교육 방식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깨닫게 된다. 주입식과 단절된 교육으로 인해 모차르트와 베토벤, 괴테, 마리 앙투아네트 등이 한 시대를 함께 보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시험만을 위한 재미없는 교육은 결국 그 분야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모르고 보면 흥미로운 부분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유럽을 여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음악사, 미술사, 역사 등 문화사를 공부하고 가는 것을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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