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듣는 것은 지혜의 영역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아는 보편적인 지식 보다 살면서 체득한 지혜로 상황을 대처할 때 좋은 결과를 얻을 때가 있습니다.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백발 어르신의 한숨, 한평생 농사를 지어온 농부의 갈라진 손, 손톱에 기름때가 까맣게 끼어있는 공장주의 손…. 지혜로운 스승은 멀리 있지 않고 아주 가까운 데 있습니다.

요즘 아내가 하는 걸 보면
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접기로 한다
지폐도 반으로 접어야
호주머니에 넣기도 편하고
다 쓴 편지도
접어야 봉투 속에 들어가 전해지듯
두 눈 딱 감기로 한다
하찮은 종이 한 장일지라도
접어야 냇물에 띄울 수 있고
두 번을 접고 또 두 번을 더 접어야
종이비행기는 날지 않던가
살다보면
이슬비도 장대비도 한순간,
햇살에 배겨 나지도 못하는 우산 접듯
반만 접기로 한다
반에 반만 접기로 한다
나는 새도 날개를 접어야 둥지에 들지 않던가

- 박영희의 시 「접기로 한다」 전문

사람은 누구나 가슴 가장자리에 지문처럼 남아있는 상처 하나쯤은 가지고 삽니다. 처음에는 그 상처로 인해원망과 분노가 쌓이다가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체념과 포기, 나아가 이해와 용서로 바뀝니다. 특히 가족 때문에 생기는 상처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는 일이 잘 안 풀리고 게다가 가족이 속까지 썩일 때는 가슴이 답답해지고, 육중한 바위로 온 몸을 짓누르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더 심할 경우는 뒷골이 땡기고 혈압이 상승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긍정적인 마음을 먹어도 마음이 괴로운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오직 참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때 박영희 시인은 마음을 접는 지혜를 발휘합니다. 어차피 상처난 마음인데 화를 낸다고 섭섭한 마음이 가셔지는 것이 아니기에 심호흡 한번 크게 하고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이슬비도 장대비도 한순간입니다. 삶의 속도를 조절하면서 살아가는 현명한 사람처럼 인내심으로 화를 조절하며 자신을 추스리는 것입니다. 더욱 멋진 것은 아내에게서 느끼는 섭섭함과 괘씸함을 시를 쓰면서 화를 가라앉히는 현명함은 글을 쓰는 사람만이 터득한 삶에 대한 지혜가 아닐까요.


유태인의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강한 사람이 누구냐, 자기의 감정을 억제할 수 있는 사람이다.’이 말을 가만히 음미해 보면 정말 뛰어난 명언이 아닐 수 없다.

파랗고 투명한 하늘, 부드러운 햇살, 깨끗하고 맑은 바람을 맞으며 어디론가 가벼운 걸음으로 나서고 싶은 날이다. 무더위가 순식간에 지나가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초가을이 되었다. 

여름 내내 힘들었던 어깨를 활짝 펴고, 가을을 맞는다면 기운이 나고,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그동안 가족에게 느꼈던 섭섭한 마음이 있었다면 조금 남은 더위가 사라질 때 모두 털어 버리고, 긍정적인 생각과 맑은 마음으로 따스한 가을 햇살을 맞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나의 하루는 맑음이다, 누가 뭐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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