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그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정책을 수립하라

한 때 ‘먼저 온 통일’로 불렸던 탈북자, 이들의 생활과 정착을 돕는 일에 앞장서 온 김동국 목사(구미 평안교회)를 만났다.

'다문화 이주민보다도 못한 처우와 지원', "안타깝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 이어 평양에서 3번째 만났다. 통일의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 듯 보이는 현 국가 상황 가운데, 과거 한때 ‘먼저 온 통일’이라 불렸던 탈북민을 13년째 계속해 지원하고 도와온 김동국 목사(52)를 만나 이들의 삶에 대해 듣고 현 상황을 바라보는 그들의 심경을 들어봤다.


대구·경북에서 민간차원으로 가장 오랫동안 탈북자 지원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구미 평안교회 김동국 목사를 만났다. 김 목사는 탈북자 관련 질문에 들어가기도 전에 탈북자들의 맺힌 심경을 대변하듯 그동안 사역을 통해 만난 탈북민의 심경을 쏟아냈다.

“현재 한국에서 탈북자의 처지를 생각하면 서글프기만 하다. 이들은 같은 민족이라고 찾아 왔는데 남한 사회는 별반 호의적이지도 않고, 정부 지원이라고는 다문화 이주민보다도 훨씬 못하며, 어찌 생각해보면 한국에 들어온 조선족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토로하며 탈북민에 대한 관심과 교육·자립 지원 등을 촉구했다.

김 목사에 따르면 “광주를 비롯한 전라도는 탈북민에 대한 인식이 좋은 데 반해 대구·경북이 탈북민에 대해 호의적이지 못한 편”이라고 한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강해서라면, 북한 정권을 싫어하는 것으로 끝나야지 북한의 압제를 피해 나온 이들마저 외면하려는 태도는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의식이 반영된 탓인지 탈북 지원 관련 측면에서 대구·경북의 사정이 제일 열악하다. 민간 지원단체도 없고, 교회적으로도 크게 나서서 지원하는 곳이 없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탈북민을 돕기 위해 나선 그를 향해 일부 사람들은 ‘좌파 빨갱이 목사’라 불렀다고 한다. 사실 북한을 도운 것이 아니라 탈북자를 도왔는데, 이젠 워낙 많이 그런 소리 들어서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한다.

교회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교회가 북한 선교는 많이 하는데 탈북자 선교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똑같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변화 받아야 할 대상이며, 종교를 말살하는 김 씨 세습 정권 아래 가장 고통받던 형제인데 이들의 정착과 자립에 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지적이다.

대구·경북에서 탈북자 정착 지원을 13년째 이어오고 있는 김동욱 목사, 그가 담임으로 있는 교회도 사실 그리 여유로운 교회가 아니다. 출석 교인 30명 미만의 교회로 외부의 지원이 있어야 유지가 될 수 있는 교회이다.

사실 지금껏 김 목사가 교회로부터 사례금을 받은 적이 없다. 노회에서 지원하는 목회자 생활비 80만원으로 그의 생계가 유지되고 있는 터라 남을 돕고 지원하는 일에 늘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런 그가 탈북민을 돕는 일에는 밤이나 낮이나 그들의 호출에 집을 나선다. 쉼 없이 달려온 13년의 긴 세월이 그를 지치게도 했고 사역의 어려움과 생활의 여유 없음이 그만둘까를 수천번도 더 고민하게 했지만, 어려움에 직면해 그를 찾는 탈북민들의 호소를 결코 외면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대구·경북으로 들어온 탈북민은 현재 1천여 명이 넘는다. 이들을 마음으로 품고 대구·경북 땅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도울 협력자들이 한명이라도 더 생겨나길 기대하는 이가 바로 김 목사이다.

지금까지 탈북자들을 돕는 기관과 교회들이 일부 지역별로 있었지만, 대다수가 사역의 힘겨움에 지쳐 떠나가고 단 몇 개의 교회와 기관이 간신히 탈북자 지원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과 백두산을 다녀왔고 김정은도 서울 답방을 할 것으로 보인다. 통일이 눈앞에 다가올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하는데, 이런 상황 가운데 탈북민의 심정은?

“탈북민들의 현재 마음은 힘들고, 복잡하고, 외롭고, 그리움에 사무처 있다. 자기는 못 가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얼마 전에 이산가족 상봉 기회도 두 번 있었고 얼마 후면 금강산 관광을 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실향민들은 두고 온 가족들을 만날 수 있고 금강산도 다녀올 수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금강산을 갈 수도 없고 두고 온 가족들도 만날 수가 없다. 결국 남북 갈등 사이의 샌드위치 신세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한국의 경제체제와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다 들어온 탈북민이 다문화 이주민보다도 못한 정착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 실상과 그 외 또 다른 어려움 점이 있다면?

“다문화 이주민들에게는 다양한 교육 지원과 함께 해마다 12억 예산이 지원돼 이들의 정착을 돕고 있다.

이에 비해 오랜 기간을 정치와 사회, 경제 등 남한과 전혀 다른 문화권 내에서 살다가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들은 다문화에도 못 끼는 신세다. 게다가 개인적인 지원 혜택이라고는 1~2년이 지나면 거의 사라진다.

특히 경북 도내 탈북자 예산은 10년 전이나 별 차이 없는 연간 2천만원에 불과해 탈북민의 정착을 돕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탈북자들은 ‘우리도 대한민국 사람인 줄 알았는데 다르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이들을 남한 사회에서는 이~삼류로 취급하는 분위기다. 그래서 그들에게 ‘북한에서 왔다’고 드러내지 말라고 한다. 국적에 대해선 차라리 조선족이나 중국 한족이라고 말하라고 조언한다. 같은 민족으로 북한에서 고통당하다 왔는데 조선족보다도 대우를 못 받는 것이 탈북자다.

다문화 정착민보다도 못한 경제적 지원과 대우를 받는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힘들게 살아가려는 모습은 지켜보는 이로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북한과 통일 분위기가 조성되는 지금 탈북민을 이해하고 하나 되는 연습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통일이 이뤄지더라도 아주 긴 시간 동안 정서적 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이렇듯 중요한 탈북민 정착 사업에 기관이나 단체가 오래 버티지 못하고 포기하고 떠나가는 것은 70여 년에 걸쳐 이질적인 환경과 문화, 정서적 차이에서 생겨나는 어려움도 크다. 국가의 배급에 의존해 살던 이들이 경쟁사회인 남한에 정착할 수 있고 문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교육과 지도가 뒤따라야 한다.

한 탈북자의 경우, 보일러가 돌아가는데 추워서 힘들다는 연락을 받고 가보니 ‘급탕’ 버튼이 눌려 있었다. 온수니 급탕이니 하는 용어를 써 본 적이 없어 생겨난 일이었다. 또 다른 탈북자는 노동 현장에서 온 종일 일하고 저녁에 퇴근했는데 ‘통장’이 밤에 찾아왔다고 어찌 해야 하냐고 전화가 왔다. ‘은행에서 받은 통장’은 가방에 들어 있는데 ‘통장’이 찾아왔다니 어찌해야 하나라는 질문이었다.

이렇듯 이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선 지속적인 돌보는 이가 있어 정착 지원을 해 줘야 하기에 통일 지향 정책을 펼치는 정부가 적극 나서서 이들의 필요를 들어보고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

탈북민의 탈북 이유가 각각 다르듯 이들의 교육 상황이나 자라온 환경, 처지 등이 각각 다르므로 이에 맞는 적응 훈련과 지원이 필요하다. 초기 탈북자 중에는 범죄를 저지르고 탈북한 이가 많지만 이후에는 생계형 탈북이 늘어났다. 특히 차별을 많이 받아 오던 함경도 지역 출신 중에는 교육마저 제대로 받지 못한 이들이 많아 국내 적응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또 중국에 체류하다가 한국으로 온 이들은 중국에서 생긴 가족과 자녀 등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 또 다른 국제 문제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북한에 남겨둔 가족 문제, 취업, 결혼, 돌, 환갑, 주거지 임대, 질병, 수술, 장례 등 이들을 지원하고 돕는 일에는 끝도 없고 분야도 다양하다.

최근 사역 중 가장 중요한 사역은 상담(통역)이다. 탈북민들이 취업을 위해 고용센터를 찾아도 외래어와 사투리, 신조어, 한자어 등이 섞인 한국말을 이해하지 못해 통역이 필요하다. 북한은 순수 우리말만 사용기 때문이다.

이렇듯 힘들고 어려운 일임에도 국가적 지원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렇듯 돈이 안 되는 일이니 아무도 나서지 않아 13년의 기간 혼자서 이 일을 진행해 왔다. 만일 일부 나를 비난하는 이들처럼 착복할 돈이 있거나 명예 등을 얻거나 했다면 수많은 이들이 이 일에 뛰어들어 정작 내가 나설 수도 없었을지 모른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공금횡령으로 고소당한 적이 있다. 조사를 끝낸 검사가 ‘무고로 고소하라’고 말한 것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무런 유익이 없어 보이니 나서지 않았고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너무나 힘들고 지치는 일이니 하던 이들마저도 떠나간 것이 아닌가?

지난 2006년 처음으로 탈북자 돕기에 뛰어들어, 2010년 경북 하나센터장을 잠시 맡아 일했고 2011년 전국 최초로 탈북여성쉼터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사역들은 재원 마련의 어려움 등 고비를 넘지 못하고 결국 2년 반 만에 정리하고 말았다. 13년이 지난 지금 탈북민 사역을 위해 이동한 거리가 64만km이다. 지구를 16바퀴를 돈 셈이다.”

▶탈북자 지원을 생각하는 이들과 당국에 대해서?

“남한 사람들 정말 탈북자에 대해 잘 모른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만갑)’ 등 TV에 나오는 탈북자 통해 북한을 안다고 말하는데 정말 어이가 없다.

북한 사람들은 자유와 상식, 보편적 가치에 대해 잘 모른다. 그렇게 교육받지도 생활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사이비 종교 집단 같은 1인 독재 우상국가이지, 공산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니다.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과 김정은에 대해서는 개xx하지만 김일성에 대해서는 지금도 장군님 이라고 호칭을 한다. 결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이다.

이젠 책상머리에서 정하는 탈북자 지원 정책이 아니라 밥도 같이 먹어가며, 물어도 보고 알아도 보고 그들의 고충을 해결해 나가는 정책들이 수립되길 바란다. 그들은 선택과 결정에 어려움이 많다. ‘당이 결정하고 인민은 따른다’에 익숙한 그들인지라 긴 시간을 두고 대화하며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과거 한때 탈북민을 먼저 온 통일이라 말했던 것처럼 이들과 먼저 하나 됨이 통일 후 남북 협력에 큰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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