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태 편집국장

입으로는 정신적 가치를 떠드는 사람도 속으로는 돈이 최고라고 여기는 시대다. 이런 때 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이런 시대일수록 사람들이 꼭 되새겨야 할 질문이 있다.


한 줄의 시는커녕/ 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

그는 한평생을 행복하게 살며/ 많은 돈을 벌었고

높은 자리에 올라/ 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

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 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

비록 뜨거움 굳굳이 견디며/ 이 묘비는 살아 남아

귀중한 사료(史料)가 될 것이니/ 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

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


- 김광규 시집[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1979년)에서


물질적인 잣대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정신적 가치는 소홀히 되는 이 시대의 현실을 김광규 시인은 그의 시를 통해 ‘시인은 어디에 무덤을 남길 것이냐’고 반문한다.

시인이 존중받지 못하고 시인이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힘든 오늘날. 시인의 심정은 우울하다 못해 참담하다. 역사조차 진실을 기록할 수 있을지 의문 시 되는 이 시대에 인간 정신의 고귀함이 절실히 요구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스스로 드러내려고 하고, 스스로 의롭다고 하고, 스스로 자랑하고, 스스로 뽐내려고 하는 것 등을 부자연스런 행위라고 말한다. 단순하며 차분하게 홀가분한 삶의 담백한 맛을 모르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대부분은 자신이 부자연스런 삶을 살아가는지를 모른 채 살아간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죽을 때 남길 묘비명(墓碑名)을 돌에 새기는 심정으로 심호흡 크게 하고 나서 유서를 한 번 써보면 어떨까. 죽음을 눈앞에 둔 소중하고 엄숙한 시간,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간사에서 과연 무엇을 떠올릴 것인가.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