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태 편집국장

피곤이 지나치면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그때 대부분의 사람은 불면의 날을 새우게 된다. 무리한 노동의 결과는 삶의 질을 저하시킨다. 이럴 때에는 정신적 부담감과 육체의 고통을 동시에 덜어줄 수 있는 휴식이 필요하다.

육체의 심한 고통은 정신적 부담감을 유발시키며 아울러 정신적 고민도 육체의 피곤을 가중시킨다. 피곤이 지나쳐 잠을 이루지 못할 때, 나는 서재에 꽂혀있는 시집을 펼쳐든다. 그리고 아무런 생각 없이 읽는다. 세상일에 바쁘고 힘들게 어둡게 살아가지만 시집을 읽고 시에 빠져드는 시간만이 내게는 피곤함을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이며 행복한 시간이다.

그렇게 보면 내게 있어 정신적 부담감의 해소가 육체의 고통을 해소시켜 주는 생명수랄까.

내가 서재 한 구석에 꽂혀있던 강영환 시인의 산문시집을 빼내어 들고 희미한 불빛아래서 아무런 생각 없이 읽은 때도 무리한 일상적 생업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피곤함으로 인해 이른 새벽까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현기증을 느끼던 최근 어느 날인 것 같다.

그의 시집을 천천히 넘기다 읽은 시 중에서 <쓸쓸한 책상>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든 노동으로 시간의 꼬리에 매달려 허둥대며 지나오다가 예전에는 분신처럼, 때론 친구같이 친숙했던 빈 방의 책상을 문득 바라보며 느낄 수 있는 쓸쓸함 느낌. 곧 자신의 쓸쓸함으로 이어지는 스스로의 살아있는 풍경을 발견하게 된다.


책상이 젖어있다.

꽃병이 넘어져 물이 쏟아진 것도 아닌데 흥건히 젖어 있다.

누가 앉아 눈물을 흘리고 떠난 것일까.

책상이 오래전부터 가진 쓸쓸한 기분이 한꺼번에 울컥 쏟아져 책상은 젖어 있다.

아이들은 꽃병에 꽃을 꽂지 않고 책상은 더 이상 소리 내어 덤벙대지 않는다.

책상에게 슬퍼하지 말라 일러도 소용없다.

배가 몹시 고픈 책상은 나의 경계 밖에서 쓸쓸하게 젖어 있다.

- 강영환 시집 [쓸쓸한 책상]애서


이 시에서 시인은 삶이 우리에게 지워주는 정신적 부담감 또는 육체적 고통을 쓸쓸히 버려져 젖어 있는 책상을 바라보며 문득 따뜻한 사랑으로 책상의 빈자리를 채우고 싶은 소망이 마음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지 않았을까.

외로움의 빛깔을 느낄 여유도 없이 대부분을 일상의 기분에 맡겨 버리는 무심함. 바쁘고 피곤한 사람들.

이제부터라도 쓸쓸한 책상을 가득 채울 따뜻함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늦은 시간 일상의 노동에서 벗어나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 두려움, 회의감 이런 것에서 벗어나 시 한편이라도 읽을 수 있는 여유, 피곤으로 꽉 찬 정신의 짙은 색깔을 <쓸쓸한 책상>을 바라보며 지우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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