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의 유해를 칠곡군 호국의 다리 아래에 뿌리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6·25 참전 용사인 美 육군 중위 제임스 엘리엇(James Elliot)의 아들 짐 엘리엇(71세)과 딸 조르자 레이번(70세)
이름도 모르는 나라의 자유를 위한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고 그 아버지가 계셨던 마지막 작전 지역에 어머니의 유해를 뿌려야 했던 전쟁의 또 다른 희생자들이 최근 칠곡군 ‘호국의 다리’를 찾았다.

미국인 엘리엇(71), 조르자 레이번(70) 남매가 그 주인공으로, 6·25 전쟁에 파병돼 낙동강 전선에서 실종됐던 아버지 미 육군 엘리엇 중위의 당시 2~3살 된 어린 자녀였다. 엘리엇 중위는 아내 알딘 엘리엇 블랙스톤(29)과 어린 남매를 남겨두고 1950년 9월 작전 중 실종돼 지금까지 생사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어린 남매와 신혼의 아내를 두고 타국의 전쟁에서 희생되어야만 했던 엘리엇 중위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또한 사랑했던 남편을 지구 반대편 작고 가난한 나라에서 잃어버리고 죽음조차 확인할 수 없었던 아내의 심정은? 남편 없이 둥그렇게 남겨진 아이들을 홀로 양육해야 했던 아내의 고뇌는?

전사가 아닌 실종이었기에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며 믿고 응어리진 가슴으로 65년의 기나긴 세월을 기다리던 아내는 결국 암으로 슬픔과 애환의 세월을 마감했다.

그 아내의 슬픔을 볼 순 없었지만 그런 어머니를 보고 자란 이젠 나이가 든 그의 딸의 눈물에서 그녀의 슬픔을 유추할 수 있었다. 남편을 사지로 파병한 미국을 원망하지 않았을까? 또한 한 민족이 둘로 쪼개어져 살육의 전쟁을 벌인 이 한반도를 저주하지는 않았을까?

그러한 그녀가 선택한 것은 사랑하는 남편의 곁이었다. 그녀의 마지막 죽음만큼이라도 남편 곁에 머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지난 2015년 그녀의 소원대로 낙동강 호국의 다리 아래 한 줌 재로 뿌려졌다. 결국 모두를 용서하고 이역만리(異域萬里)서 외롭게 사라져 간 사랑하는 남편 곁을 찾은 것이다.

남편 잃은 슬픔을 안고 홀로 살아가는 어머니 아래 자라난 2~3살의 어린 자녀들의 슬픔 또한 작지 않았을 것이다. 한창 재롱을 부릴 시기에도 아버지는 안 계셨고, 사춘기 갈등과 고뇌의 시기 또한 홀로 이겨내야 했다. 아버지 없는 슬픔과 외로워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자라야 했던 자녀들의 고뇌는 얼마나 컸을까? 명분 없는 전쟁에 잃은 아버지의 빈자리가 자녀들에겐 결코 작지 않았을 것이다.

이 모두가 전쟁의 비참한 단면이며 우리 민족으로 인한 전 세계의 슬픔이었다. 이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칠곡군은 2013년부터 국내 유일의 호국축제인 ‘낙동강세계평화문화대축전’을 마련해 개최하고 있다.

호국평화의 도시 칠곡군에서 거행되는 낙동강세계평화문화대축전은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청소년과 젊은 세대에게 전쟁 참상과 평화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산교육의 장이 됐다. 6.25 전쟁 최대 격전지이자 전쟁의 흐름을 바꾸고 승리의 전환점을 마련한 구국의 현장인 칠곡 생태공원에서 평화에 대한 외침은 그 어떤 것보다도 남다르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행사에서 칠곡군과 칠곡군 의회는 6·25전쟁 당시 칠곡 지역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서 실종된 미 육군 엘리엇 중위의 자녀를 초청, 이들에게 ‘명예 군민증’을 전달하며 위로했다.

이날 조르자 씨는 “전쟁에 참전한 아버지의 희생과 우리 가족의 아픔을 기억해 준 칠곡 군민들에게 매우 고맙고 눈물 난다”며 “부모님이 사후 재회해 평화로운 세상에서 영면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백선기 군수는 “부모님이 계셨기에 내가 존재하듯, 지금의 평화도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 계셨기에 존재할 수 있다”며 “평화의 시대일수록 그 평화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는 일에 결코 소홀해서는 안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한편 6·25전쟁 중 미군 3만3천642명을 비롯한 3만7천645명의 유엔군이 자유를 지키려다가 숭고하게 전사했다. 이들의 유가족에겐 또 얼마나 많은 슬픔과 애환이 가슴에 상처로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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