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아마 그 대답은 사람의 수만큼이나 천차만별일 것이다. 술은 세상의 고통을 가장 순식간에 치료해 주는 만병통치약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인간을 한순간에 또라이로 만들어 버리는 악마의 유혹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삶의 활력을 주는 감로수와 같다고 생각하는 이도 더러는 있을 것이다. 물론 나처럼 혐오식품으로 분류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아무튼 술이란 인간의 역사만치나 재미있는 사건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술꾼들의 위대한 전설이 아닐 수 없다. 작가 이외수의 명상집에는 오리지널 술꾼이 읽으면 정말 고마워하며 무릎을 칠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루만 술을 마시지 않아도 목구멍에 가시가 돋는다고 생각하는 술꾼이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존경하는 은사로부터 책 한 권을 선물로 받았다. 그는 밤을 새워 그 책을 모두 읽었다. 그 책에는 술이 인체에 얼마나 해로운 극약인가가 상세히 기술되어 있었다. 그는 깊은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는 단단히 결심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절대로 책을 읽지 않겠노라고.”

- 이외수 명상집 '사랑 두 글자만 쓰다가 다 닳은 연필' 속의 '결심'전문

‘앞으로는 절대로 책을 읽지 않겠노라고’하는 대목은 반전이자 압권이다. 하여튼 술은 술꾼들에게는 신이자 삶이고, 가슴 아린 사랑이고, 음악이고, 시이다. 나는 술주정뱅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런 술꾼들 때문에 가슴이 없는 세상, 오늘까지 시들이 살아남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내 맘대로 해본다.

살아 있으라, 어떻게든 살아 있으라, 술꾼들이여.
이 쓸쓸한 가을을 술 한 잔으로 가슴 따듯하게 데우면서, 제발 책은 읽지 않아도 좋으니.

술을 예찬한 원로 시인 정훈의 작품을 보면 주선이 따로 없다.

사람보다 술이 좋더라 / 몸이 불타 이글거리면 / 내 위에 잘난 놈 없어 좋더라 / 비분보다 차라리 술에는 위엄이 있어 / 내가 술인지 / 술이 나인지 / 기인이 된 것처럼 자랑스럽구나.

깊어가는 가을, “진실은 술속에 있다. 오늘날 진실을 이야기할 기분이 되기 위해서는 취해야 한다”는 글귀가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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