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용 사진작가

구룡포와 호미곶에서 나고자란 서인만(59)씨는 어린시절 명월리(강사3리) 절골마을에 있는 해봉사에 초등학교 1학년 때 갔던 소풍의 추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후에도 구룡포와 호미곶의 문화역사를 찾아 발굴하는 활동을 하면서 해봉사에 있는 백일홍(배롱나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설명을 해주었다.

해봉사에는 가지 둘레가 옛 초가지붕만한 뚜껑을 가지고 있는 배롱나무 한 그루가 마당 한 가운데 서 있다. 여기 배롱나무는 밑둥의 규모나 모양, 줄기의 형태, 가지의 둘레 규모 등은 가히 세계 유일한 배롱나무라고 자랑할 만하다고 한다. 붉은 배롱나무 꽃은 8월이 만개하는 절정기인데 가히 장관이다.

배롱나무는 선비나무라고 하여 서원, 향교, 사대부 집안에 꼭 심었다고 한다.

꽃이 백일 간다고 하여 백일홍이라고도 하는데 사실은 한 송이 꽃이 백일 가는 것이 아니고 여러 꽃송이가 어우러져 피고지고를 계속하면서 백일 동안 피어있다고 한다. 해봉사 배롱나무의 수령은 약 250~350년으로 추정을 하지만 정확한 나이를 알지 못한다.

해봉사는 옛 명월암으로 신라시대인 636년(선덕왕)에 왕명으로 창건 되었는데 당시는 군마를 기르는 곳으로서 군마사육의 안전과 성공을 축원하는 사찰로 창건 하였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이르러 퇴락했다가 조선시대 명종(재위 1546~1567)때에 상선대사가 중창하였다.

당시 가람의 규모가 당우 13동에 40여 명의 승려가 거주할 만큼 큰 사찰이었다. 그러나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전 당우가 소실되었다. 그 뒤 근대에 이르러 암자 형태의 해봉사를 창건하여 법등을 이어나갔는데 그나마 1973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87년에 중창불사가 시작되었다.

1987년 용왕각, 1992년에 대웅전, 1994년 요사를 지었으며 2001에는 대웅전 앞에 다보탑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지금도 중창불사를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명월암에는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하여 시절을 한탄하며 전국을 유람하면서 명월암에 들러 시를 남기고 간 생육신인 매월당 김시습의 시가 전해지고 있다.


산넘고 물건너
황혼이 깃들 무렵
명월암 다다르니
창명(滄溟)에 달이 뜨네
스님은 어디가고
불당(佛堂)에 촛불 비쳐
낙엽이 광풍(狂風)에 쌍여
손의 뺨을 친다
천년노불(千年老佛) 앞에
합장기도(合掌祈禱)하니
동자(童子)는 불 밝혀
길손을 인도하네
산채맥음(山採麥飮)이
공복(空腹)에 족(足)하오나
약주(藥酒) 한 잔 없음이
욕객(浴客)의 한(恨)이더라.

- [명월암 가는 길, 매월당 김시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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