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태 편집국장

'고독하지 않게 죽는 연습을 위해 시를 쓴다'는 선배이자 내 문학의 스승은 시를 쓰면서 혼자서 살아가는 분이다. 나는 그를 80년도 중반에 처음 만났다. 그의 세 번째 시집 <장작을 패면서>가 막 출간된 직후였다. 문학에 흠씬 빠져있던 나는 그의 시집을 선물로 받으며 이런 게 시구나 하는 느낌을 그때 어렴풋이 감지했다고나 할까. 십여 호 남짓 옹기종기 모여 사는 동대산 자락에서 농사를 지으며, 힘든 삶을 살아가면서도 세상에 대한 불만이나 원망은 티끌만큼도 없이, 오직 시만을 쓰는 그의 열정적인 모습과 함께 풋풋한 인심을 나는 늘 잊지 못한다.


하늘 한 번 올려다보고
여름 산 한 번 찍고
땅 한 번 내려다보고
가을 들판 찍어라


하늘과 땅 사이에서
아직은 한 번도 찍지 않은
不惑도 찍어라
不惑에 들끓는
강물을 찍어라


장작을 패면서


지난날
내 단점과
회억도 찍어라

- 김재진의 시 '장작을 패면서' 전문


평소 그의 시에 대한 지론은, 아무리 세상인심이 변하고 세상이 혼탁하다 해도, 시(詩)만은 늘 건강해야 하고, 독자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주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시는 늘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의 미나리처럼 싱싱하게 푸르고 건강하다. 불혹의 아픔과 불혹에 들끓는 나날의 일상과 견디기 어려운 현실의 고뇌를 도끼로 패면서, 지난날의 잘못까지도 가차 없이 찍어 자책하지만 이는 시 정신을 성숙시키기 위한 준엄한 자기반성에 다름 아니다.

젊은 시절 수산회사에 몇 달 일한 것 빼고는 평생을 농사지으며, 시를 위해 순교하고 있는 선배의 삶은 구도자의 길 그 이상이다. 그를 만날 때마다 느끼는 고고한 시인정신과 시업(詩業)을 숙명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모습에서 감동스런 한 인간의 전형을 보게 되는 것도 나에게는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시를 만나고, 인간적으로 좋은 시인을 만나는 것은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다.

오늘따라 선배가 사는 궁벽한 산촌마을과 함께 주름살투성이의 선배 얼굴이 보고 싶어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어색한 듯한 애매한 표정으로 '허허' 하며 웃는 선배의 너털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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