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태 편집국장
하늘 한 번 올려다보고
여름 산 한 번 찍고
땅 한 번 내려다보고
가을 들판 찍어라
하늘과 땅 사이에서
아직은 한 번도 찍지 않은
不惑도 찍어라
不惑에 들끓는
강물을 찍어라
장작을 패면서
지난날
내 단점과
회억도 찍어라
- 김재진의 시 '장작을 패면서' 전문
평소 그의 시에 대한 지론은, 아무리 세상인심이 변하고 세상이 혼탁하다 해도, 시(詩)만은 늘 건강해야 하고, 독자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주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시는 늘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의 미나리처럼 싱싱하게 푸르고 건강하다. 불혹의 아픔과 불혹에 들끓는 나날의 일상과 견디기 어려운 현실의 고뇌를 도끼로 패면서, 지난날의 잘못까지도 가차 없이 찍어 자책하지만 이는 시 정신을 성숙시키기 위한 준엄한 자기반성에 다름 아니다.
젊은 시절 수산회사에 몇 달 일한 것 빼고는 평생을 농사지으며, 시를 위해 순교하고 있는 선배의 삶은 구도자의 길 그 이상이다. 그를 만날 때마다 느끼는 고고한 시인정신과 시업(詩業)을 숙명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모습에서 감동스런 한 인간의 전형을 보게 되는 것도 나에게는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시를 만나고, 인간적으로 좋은 시인을 만나는 것은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다.
오늘따라 선배가 사는 궁벽한 산촌마을과 함께 주름살투성이의 선배 얼굴이 보고 싶어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어색한 듯한 애매한 표정으로 '허허' 하며 웃는 선배의 너털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대경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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