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호권 작가·호미반도 해안둘레길 2코스

친구 보게나.
가던 걸음 잠시 멈추고 한 숨 돌리며 자네에게 몇 자 적네.
가만히 생각해보니 참 많이도 걸어왔네. 순식간에 지나온 찰나의 길이라 여겼는데 우여곡절 많았던 길이었네. 남아있는 길에 대한 자신감과 보이지 않는 길에 대한 믿음으로 앞만 보고 걷기만 했던 지난날이었네. 잠시 내려놓고 뒤 돌아보니 참으로 만만치 않았던 길이었음을 이제야 알겠네. 길의 마디마디를 넘을 때마다 어김없이 치열하고 비장한 전투였었네. 죽기 살기로 덤비고 이기려 안간힘을 다 쏟았었네. 그렇게 힘겹게 마디마디를 넘길 때면 한 단계 성숙해졌다고 위안 삼았었고 스스로를 대견해 하며 견뎌내고 이겨냄을 스스로에게 칭찬하고 위로했었네.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위안한 것은 힘겨움을 감추기 위한 자기 최면이었단 생각이 드네. 치열한 전투를 끝내고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다음 전투를 준비해야하는 이어지는 긴장감으로 곳곳에 난 상처가 아물 겨를도 없었음을 이제야 알겠네. 이 길을 걷는 목적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고 그 과정에서의 순간을 소중히 내안에 담아내는 것이란 걸 또 다시 생각하게 되네.
친구 보게나,
옹이 없는 나무 없듯이 돌부리 없는 길 없으니 우리 손 꼭 잡고 여유있게 뒤 돌아보며 천천히 오래오래 함께 걸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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