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청정지역 삼두봉 산할아버지 농장

토종 호두 쇼핑몰로 전량 직거래 판매
고향에 귀농해 부모님 모시고 국산호두와 칡즙 오미자 재배하는 딸 바보 호두 삼촌의 산골이야기


“땀을 흘리고 정성을 들여 생산한 농산물로 살아가다 보면 이 삶이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삶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호두나 칡, 오미자를 농약이나 화학비료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에서 속에서 그대로 길러 내는 부모님(산할아버지·김대진·79)의 농사철학이 참 좋습니다. 백두대간의 맑고 깨끗한 자연을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호두삼촌 김현인 대표(45)가 경영하고 있는 산할아버지 농장은 전라도와 충청도, 경상도의 경계가 되는 소백산맥 인근 삼도봉(三道峰)이 있는 곳으로 해발(600M) 고도가 높고 토질이 비옥해 호두 농사의 적지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제2대 산할아버지를 꿈꾸며 강소농 육성과 호두 농사에 매진하는 김 대표를 만났다.


◇ 효심과 열정으로 시작된 김 대표의 1차 귀농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살겠다고 늘 생각해 왔던 김 대표는 대학 졸업 직후 고향인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로 돌아와 3년 동안 농사를 지었다.

초보 농부로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며 의욕적으로 농사일에 참여했지만 농사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생산한 배추를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1천500만원이 넘는 화물차까지 구입했지만 그해 배추 파동이 나면서 큰 손해를 봤고 차 할부금을 갚기 위해 시내 학원에서 한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고비를 맞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60여 년간 직접 농사를 지어 오시던 아버지와 의견이 맞지 않자 부모님께 더는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마음에 결국 농사를 포기하고 대학생활을 통해 익숙했던 대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버지의 삶의 터전인 고향의 논밭에서 건강이 좋지 않으신 부모님을 도우며 어린 시절 꾸어 왔던 부농의 꿈을 펼쳐보려 했건만 세상이 만만치 않음만 아프게 경험하고 말았다.

◇ 간절함을 담아 추진된 2차 귀농 시도

대구에서 학원 강사 생활을 하던 중 인생의 반려자인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됐다. 같은 국어과 강사였던 아내는 이후 임용고시에 합격해 울산지역 고등학교로 발령을 받았고, 김 대표도 울산에서 학원을 개원해 행복한 신혼을 보낼 수 있게 됐다.

꿈같던 신혼의 행복감도 아이가 태어나면서 점차 사라졌다. 근무 시간대가 서로 다른 직장으로 인해 아내와 대면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 갔고,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와 육아에 지친 아내는 이를 더욱 견디기 힘들어했다.

결혼 4년차에 접어들던 2013년 어느 날 김 대표는 2차 귀농을 생각하게 된다. 먼저 연세가 많으신 부모님의 건강이 우려스러울 정도로 염려됐고, 또한 농사일을 하게 된다면 직장생활과 육아로 힘들어하는 아내를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형과 누나 셋인 5남매 중의 막내였지만 부모님께 대한 마음만큼은 지극했다.

결국 아내의 동의를 얻어 김천으로 이사했다. 울산광역시로 옮기려 하는 교사들이 많았던 탓에 아내의 직장 이전도 염려와 달리 순조롭게 진행됐다.

전업농으로 2차 귀농·귀촌한 지 2년 만인 2015년 6월, 김천시에서 홈피 제작비를 지원받아 ‘호두삼촌’이란 애칭으로 홈피를 개설했으며, 이후 체험농장 건축비 일부를 지원받아 작업장까지 마련하면서 적극적인 농업활동에 나섰다.

호두는 고려 말 원나라를 통해 천안에 처음 들어 왔으며,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해 두뇌 건강과 피부에 좋은 음식재료며 또한 약재다. 삼도봉을 중심으로 경북 김천과 충북 영동, 전북 무주에서 전국 호두 생산량의 50%를 생산하고 있으며, 그중 25%를 김천에서 생산하고 있다. 김천 지역 중 특히 부항면이 김천에서 호두 생산량이 가장 많은 곳으로 100년 넘는 나무들을 마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과거에는 호두나무를 담 옆이나 밭두렁 등 자투리땅을 이용해 많이 심었지만 국산 호두가 비싼 값에 거래되면서 논밭에 심는 농가가 점점 늘어났다.

김 대표의 아버지께서도 지난 10여 년 전부터 호두나무를 논둑이나 밭둑이 아닌 논밭에 심기 시작하셨다. 원래 담배농사를 많이 하시던 분이셨는데 담배 농사가 일이 워낙 많고 힘이 많이 들자 생각을 바꾸셨다.

다른 농사에 비해 호두는 병충해에 강하고 일손이 적게 들어 힘이 약해지는 노년에도 관리하기 적합한 종목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다. 사실 호두나무는 심은 지 15년 이상이 되어야 제대로 열매를 맺기 시작하고 25년이 넘어야 전성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자식과 손자를 위해 심는 나무라고 말들을 한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김 대표의 아버지는 결국 아들과 손주들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신 것이다.

고향인 부항면이 호두 재배에 적합한 환경이며 동리에서 가장 많은 호두나무를 가진 집이 김 대표의 집이었던지라, 김 대표의 어린 마음속엔 ‘호두나무 농장을 크게 하며 멋있게 살고 싶다’라는 꿈이 자리 잡음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결혼 후 처음 귀농이란 말을 꺼냈을 때 김 대표의 아버지는 단지 김 대표가 객지에서 생활이 어려워 귀농을 생각하는 것으로 생각하셔서 걱정이 많으셨다. 그러나 곧 진심을 알게 되시면서 즐기시던 술도 많이 줄여 건강도 좋아지셨고, 허리를 다치신 어머니는 김 대표가 가까이서 늘 도울 수 있어 많은 회복이 이뤄졌다.

귀농 첫해는 소득이 적었다. 봄이면 어린 호두나무 사이에 감자와 콩을 심고, 가을이면 논둑과 밭둑, 뒷마당의 호두를 따고, 겨울에는 아버지와 함께 깊은 산중에 들어가 칡을 캐고 썰어 말려 판매를 했지만 겨우 생활할 만큼의 소득밖에 되지 않았다.

◇신뢰를 얻기 시작한 호두 직거래 장터
이후 농업기술센터의 강소농 교육을 신청하고 적극적인 배움의 길로 들어섰다. 특히 생산한 우수한 농산물의 판로개척을 위한 SNS 활용법에 관심을 두고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했다. 홈피를 쇼핑몰로 발전시키고 통신판매 사업을 신청하면서 마케팅교육을 받았다.

블로그를 활용해 영농 일기 형식으로 농사일을 정리, 유기농 농사를 이해시키려 노력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품질은 좋으나 소출이 적어 값싸게만 판매할 수 없음도 점차 공감할 수 있게 됐다.

호두 품질에 대해선 자신이 있었다. 중간 상인들이 인근 지역보다 부항면 호두를 최고의 가격으로 사들여 간 것만 봐도 부항면 호두 품질의 우수성이 상대적으로 입증된 것이었기에 유통망 확보가 무엇보다 절실한 상황이었다.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김 대표의 호두가 소비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일손도 바빠졌다.

판매 초기, 선별에 대한 개념이 없이 보낸 일부 제품들에서 작은 것들만 보냈다는 불만이 제기 되자, 충북 영동 등 직거래 농가를 견학, 호두 크기별 선별 방법과 차등 가격 책정, 전자저울을 통해 속이 빈 호두 골라내기 등을 도입·적용해 상품을 새롭게 구성했다. 이를 적용해 판매하자 알(피)호두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가 올라갔다.

최고의 상품으로 소비자들에게 인정받으려면 호두 선별을 위한 정밀한 기계 마련이 필요하다. 크기에 따라 1g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을 정도의 기계가 마련돼야 품질에 대한 정확한 선별 작업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크기에 비해 가벼운 것은 속이 빈 것이나 썩은 것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무게에 따른 선별법은 우수한 품질의 상품을 만드는 데 필수 요건이 된다. 그런데 현재 국내 선별기는 2g 이상 오차가 나서 선별이 잘 안 되고 있다. 전 자동선별기의 개발이 필요하다.


◇ 친환경 영농 원칙 준수와 호두 농사의 어려움
화학비료를 많이 주면 나무가 웃자라 겨울철 동해 피해를 당할 수 있어 나무를 위해서 퇴비만으로 거름을 주고 있다. 우분(牛糞)에 들깨 줄기와 묵혀 놓은 볏짚, 호두의 겉껍질인 청피, 유박, 칡즙을 짜고 난 부산물 등을 발효시켜 나온 유기물이 풍부한 거름을 사용하기에 순환농법이며 친환경농법이 아닐 수 없다.

병충해에 강한 호두의 특성상 병해충이 많지 않지만 이를 구제하기 위해서 친환경농약을 만들어 사용한다. 식용유를 원재료로 한 구충제와 정제된 유황을 사용한 살균제 등 친환경 농약을 사용해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 창출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청설모로 인한 피해가 매년 컸다. 공기총 순찰을 하여야 할 정도로 주의를 기울이지만 ‘한번 오면 끝’이라 할 정도로 피해 규모가 컸다. 그런데 최근 들어 천적이 나타난 탓인지 거의 나타나지 않아 다행이라고 한다.

김 대표에 있어 호두농사의 어려움은 호두나무 알레르기와 추수의 위험이다. 추수 때마다 피부에 돋아난 것이 송충이로 인한 피부염인 줄 알았는데 알레르기 치료를 받고 깨끗이 나았다.

또 13~14m까지 자라는 호두나무의 특성상 긴 장대를 들고 나무 위에 올라 열매를 따야 하기에 위험이 적지 않다.

귀농 3년차, 호두 수확 경험을 자신하며 호두를 따던 어느 날 있었던 일이다. 김 대표는 여느 날처럼 나무에 올라 먼저 안전띠를 묶었다. 이후 나무를 안고 따던 손마저 놓고 두 손으로 장대를 힘껏 휘둘러 열심히 호두를 땄다. 일이 끝나고 안전띠를 풀려던 김 대표는 깜짝 놀랐다. 그동안 안전띠가 잘못 묶여 있었던 것이다. 만일 나무 위에서 중심을 잃기라도 했더라면… 끔찍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인근 지역 농민 중 지난해 한 명이 나무에서 떨어져 사망하고 두 명이 다쳐서 후유증을 앓고 있다. 면적이 넓으면 헬기를 활용하거나 진동을 이용한 호두 수확용 기계를 도입하면 되지만 사용료와 구입비가 비싸고 사용에 한계가 있어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 호두를 활용한 상품과 국내 수급 및 유통망

호두를 통해 생산한 기름도 찾는 이가 많아 조금씩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 호두기름은 예로부터 약재로 사용됐다. 중국의 약재서인 본초강목에 따르면 환절기 기침과 멈추지 않는 기침 치료제로 호두기름이 효과적이란 기록이 있으며, 태조 이성계의 후처인 강씨가 아들의 폐병 치료를 위해 법제한 호두 기름을 구했다는 기록도 남아있을 정도로 귀한 약재다.

이러한 호두 기름에는 약간의 독성이 있어 법제(밥 위에 찌고 말리고를 3번 반복)한 후에 기름을 짜야 불순물이 제거된다고 해서 김 대표는 전통 방법을 따라 호두기름을 생산하고 있다.

또 도매상인들은 호두 속살이 하얀 것을 선호해 농민들에게 조금 일찍 딸 것을 주문한다. 속살이 하얀 것이어야 올해 딴 호두로 인정받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영글었을 때 따야만 맛이 고소하고 영양도 더 충실하다. 다만 색이 진해 한해 묵은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지만 신뢰가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호두는 다른 농산물과 달리 정부 수매가 전혀 없다. 따라서 소비자와 직거래가 되지 않는 노년층 농민들이 중간상인을 통해 시장에 유통, 중간상인만 폭리를 취하는 유통구조라 개선이 시급한 실정이다.

호두 국내 소비량의 10%만이 국내산이란 발표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2%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전국 휴게소에서 판매되는 호두빵의 대부분은 수입산 호두를 사용해 만든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호두 농사가 없는 철에는 백두대간의 험하고 깊은 산 속에서 아버지와 함께 곡괭이와 낫으로 산의 기운이 담겨 있는 좋은 칡을 직접 채취한다. 칡은 ‘에스트로겐’이 콩의 10배, 석류의 626배나 되어 여성의 갱년기 질환과 골다공증, 노화방지, 안면홍조, 당뇨, 숙취 해소, 소화불량, 변비에 좋으며, 미국 하버드대가 선정한 세계 10대 식품 중에 하나다.

◇ 김 대표의 농장과 봉사 활동
김 대표의 5천평의 호두농장은 앞으로 5년 후인 2023년(15년차) 수확량이 늘어나기 시작해 25년차(2033년)가 되면 전성기에 접어든다. 대부분이 10년 내외의 어린나무들이라 앞으로 소출이 더욱 기대된다.

현재 김 대표는 김천시 농업기술센터 내의 강소농 교육이수자 모임(김천 소셜 세일즈반)의 총무를 맡아 봉사하고 있으며, 농촌진흥청 재능기부 위촉 강사로 강소농 농민들에게 SNS 활용법 등을 강의하고 있다. 학원장과 강사 경력을 통해 숙련된 그의 강의 능력은 강소농 교육생들에게 또 다른 희망의 빛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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