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문 한동대 교수

요즈음 산업유산 혹은 산업경관보전이라는 개념들이 자주 언급되는데, 이는 과거의 산업시설들을 보전·활용하자는 움직임이 커짐에 따른 것이라고 보아진다. 물론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먼저 다양한 유무형의 산업유산에 대한 개념정립과 가치발견이 중요하다고 본다. 산업유산을 소중히 보전한다는 것은 한 사회가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고 자부심을 갖는다는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꾀할 수 있음을 함축하고 있다고 본다.

사실 지금까지 옛것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문제가 있었다. ‘새것이 더 좋고 큰 것이 더 좋다’는 근대화개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산업유산은 당시의 경제사회상황을 반영하고 있기에 우리의 역사·전통에 대한 교육적인 이유에서도 필요하겠지만, 또한 이는 옛것을 바탕으로 재활용의 기회를 제공하고, 더 나아가 새로움, 차별화된 새로움을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또한 이를 바탕으로 지역의 경제·사회·문화발전의 기틀이 될 수 있기에 중요한 것이다.

영국 블래나번에 가면 폐쇄된 제철소가 옛 모습대로 잘 보전되어 있고 많은 이들이 찾아온다. 이곳은 19세기 산업과 사회를 구체적인 형태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이다. 블래나번 제철소 주변은 19세기와 20세기초에 전성기를 구가하던 사우스웨일즈의 석탄과 제철산업의 모습을 포괄적으로 보여준다. 석탄과 광석광산, 채석장, 철도, 용광로, 광부들의 숙소 및 사회기반시설 등 모든 요소들이 잘 보전되어 있다.

독일의 푈클링겔 제철소는 용광로에 바람을 넣는 거대한 송풍기를 가동하기 위해서 용광로가스를 대규모로 사용한 세계 최초의 제철소이다. 초기에는 엔진을 2개 사용했으나 나중에는 9개로 늘어났다. 1903년에 6번째 용광로를 건설하였고, 1911년에는 장입대를 건설하여 이는 그 당시 최대 규모였다. 이러한 역사적인 흔적들이 원래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프랑스의 오르세미술관은 재활용 건물의 대표적 사례이다. 1871년 파리코뮌 때 화재로 손실된 오르세궁 부지를 오를레앙 철도회사가 인수받아 파리시내열차종착역과 호텔로 개조했다. 2년의 공사기간을 거쳐 화려한 외관으로 1900년 개관되었으며 1939년 폐쇄되었다. 이후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1973년부터 시작된 장기구상과 실행과정을 거쳐 1986년 미술관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20세기 현대미술의 전시장으로 대표되는 '테이트모던'은 2000년 5월 개관 당시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았다. 국제규모의 현대미술관이 들어섬에 대한 관심도 있었지만, 미술관건물의 내력과 변모에 대한 호기심도 컸기 때문이다. 런던 템즈강 서남쪽에 위치한 이 건물은 원래 화력발전소였다. 테이트모던의 모태인 화력발전소를 디자인한 ‘자일스 스콧’은 발전소건물이 장래 대성당으로 변신될 가능성을 생각하며 그에 합당한 디자인을 접목하려 했다고 한다. 그는 화력발전소가 영원할 수 없음을 사전에 예상했었다. 그는 15~16세기에 지어진 대성당이 세월을 거듭하면서 종교를 넘어선 도시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음을 강조하며, 20세기 도시발전의 주역인 발전소도 훗날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는 것인데, 10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이 화력발전소는 21세기 문화아이콘인 미술관으로 거듭났다.

영국 뉴캐슬의 발틱미술관은 발틱제분소(Baltic Flour Mill)였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곡물을 수입하는 영국 굴지의 제분소로 명성을 날렸다. 하지만 1984년 대형 화재와 영국 전체의 장기 경제침체로 제분소는 문을 닫고 그 후 14년 동안 도시의 흉물로 남게 된다. 1994년 뉴캐슬시의회는 발틱제분소를 세계 최고의 현대미술관으로 변신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쇠락한 산업의 상징이 되어버린 이 제분소를 철거하자는 의견도 많았지만 워낙 기초공사가 탄탄하다 보니 철거비용이 새 건물 짓는 비용을 초과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와, 결국 외관은 그대로 두고 내부만을 미술관으로 개조하기로 한 것이다.

만약 ‘오르세미술관’, ‘테이트모던뮤지엄’, ‘발틱미술관’ 등이 기존 건물과 시설들을 재활용하는 대신에 새로운 건물의 뮤지엄 내지 미술관으로 지었다면 아마 현재와 같은 개념과 아이디어를 담아내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기존 건물의 특성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그 장점을 찾고 활용하려는 노력 속에서 독창적인 형태와 공간이 탄생하게 된 것이라고 본다.

포항은 1970년대 초에 건설된 포스코를 중심으로 형성된 일종의 신도시라고 할 수 있다. 포스코의 방대한 시설들은 한국의 산업발전의 초석으로서 포항의 자랑이기도 하다. 지금도 방대한 시설들이 가동 중이고 포스코뮤지엄에도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멀리에서도 포스코의 시설물들, 특히 영일만 건너의 야간조명이 아름답다. 하지만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변모되는 글로벌시장상황에 의해 포스코에도 신기술을 바탕으로한 새로운 공정과 시설들이 나타나게 되고 오래된 시설들이 폐기될 상황이 될지도 모르겠다. 10년 후 혹은 20년 후에라도 폐기될 시설들을 다른 용도로 활용하거나 산업유산 및 테마·교육공간으로 보전할 수 있는 방안모색이 중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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