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문 한동대 교수

포항은 철강산업 태동 이전에는 동해안 제일의 어업전진기지이자 농수산물 집산지이며 물류중심지였다. 지금도 동빈내항가에 선박엔진수리공장, 제빙공장 등이 일부나마 남아있다. 경상북도가 2018년 향토뿌리기업 2개소 산업유산 4개소를 신규지정 했는데, 그중 포항의 동성조선이 향토뿌리기업으로 지정되었다. 동성조선은 1955년 설립되어 목선건조와 수리를 시작하여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데, 산업유산으로서의 가치가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동빈내항 접안지역이자 포항의 구도심인 동빈동지역이 크게 발전하게 된 계기는 1914년부터 약 20여년간에 걸쳐 진행된 형산강제방과 포항축항공사였다. 1930년대에는 동빈내항이 동해안의 수산업전진기지로 정어리·고등어·청어의 생산이 특히 많았는데, 그 이후 이 일대에는 각종 어업 보조산업이 번성하여 냉동공장, 통조림공장, 주물공장 등이 대를 이어오고 있다. 지금은 이러한 시설들이 많이 사라지고 남은 것들도 낡아져 있지만, 이러한 기능과 시설들에 대해 다시 한 번 그 가치를 심각히 고려해보아야 한다고 본다.

포항 교외지역이자 한반도 꼬리에 해당하는 지역에 위치한 호미곶등대와 등대박물관도 산업유산으로 중요하다. 이를 방향키로 하여 수많은 어선과 화물선들이 항로를 잡았을 것이다. 이 등대는 1902년 착공하여 1908년 준공된 우리나라 최고최대의 근대식 등대이다. 등대의 높이는 26.4m로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높으며, 둘레는 하부 24m, 상부 17m이다. 광력(光力)은 1,000촉으로 16마일 해상 밖까지 불빛이 보이며 2마일 해상 밖까지 들리는 안개신호기가 설치되어 있다. 함께 있는 국립등대박물관은 1985년 2월 개관된 전국 최초의 등대박물관으로 항로표지기의 발달과정과 해운항만 등 등대발전사에 관한 자료 16종 710점을 전시하고 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1901년 조선에서 러시아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러일전쟁을 준비하던 중 일본의 한 수산실업전문학교 실습선이 우리나라 연안의 해류, 어군의 이동상황, 수심 등을 조사하기 위하여 대보리 앞바다를 지나다가 암초에 부딪쳐 전원이 익사하는 사건이 있었다. 일제는 이 사건의 책임을 한국정부에 전가하면서 손해배상을 요구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1902년 1월 우리 돈으로 일본인에게 등대시설을 청부시켰다. 이러한 역사들을 좀 더 알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번에는 철거된 구 포항역사이야기이다. 동해남부선의 종착역으로 1918년 11월 1일 포항-하양간 협궤선 개통. 1945년 7월 10일 역사신축, 1961년 11월 20일 역사 수리, 그리고 2015년 3월 포항역 이전으로 폐역 된 후 철거되었다. 건축양식이나 스케일이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으나, 이러한 형태의 역사가 전국에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았고, 이를 통해 수많은 해병대 장병들이 입소했고, 제대했고, 월남파병차 떠나기도 했었다. 지금은 그 기차길이 ‘포항그린웨이’로 발전했고, 포항역사 자리는 동서로 분단된 포항도심을 잇는 연결도로가 건설되어 있다. 포항역사가 형태를 보전하여 박물관, 전시장 등 다양한 공공기능으로 활용될 수도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은 아직도 남아 있다.

빛 바랜 벽돌과 콘크리트, 녹슨 철근과 철골.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변에 남은 산업유산들을 흉물로 간주해 철거할 대상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해 우리 살아가는 이 시대의 크고 작은 역할을 담당할 한 부분으로 포용하는 깊은 지혜이다. 산업유산이 가진 고유한 특성과 잠재가치를 이해하고, 이를 창의적으로 리모델링 및 융합하여 실용가치를 만들어 내거나 스토리텔링 및 콘텐츠화하는 혁신적 도시재생·브랜드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 도시의 역사유산의 잠재적 가치는 칠포의 암각화에서부터, 정미소·양조장·대장간, 그리고 근현대시설물 등 다양한 곳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역사 및 산업유산의 발굴 및 콘텐츠화를 통해 지역의 중요하고 의미 있는 특성들을 브랜드함으로써 그 도시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산업유산에 대한 가치인식제고와 도시가치극대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산업유산 발굴, 가치화·지역문화화하기 위한 체계적 전략과 실행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관심저조, 연구 및 토론부족, 담당행정부서 예산부족, 담당전문가부족 등 문제가 커서 산업유산의 보전 및 가치화에 대한 체계적 접근에 한계가 크다고 본다.

포항은 인구 50여 만 명의 중간 크기 도시이지만, 국내는 물론 세계에 잘 알려져 있다. 이는 물론 포스코의 존재 때문이었다. 지금도 영일만을 사이에 두고 바라다 보이는 웅장한 포스코의 자태는 포항의 자랑이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본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첨단의 제철관련 시설들이 들어선다 하더라도, 과거부터 포스코의 주된 역할을 담당했던 방대하게 펼쳐진 특징적 공정들의 시설들을 허물지 말고 보전해서 많은 이들이 현장역사박물관으로 찾아올 수 있게 하면 좋을 것 같다. 그 이외에도 동빈내항의 남겨진 오래된 조선소나 어선지원 관련 시설들, 구룡포의 어항 관련시설과 근대화거리, 영일만의 ‘멸치잡이’, ‘후리그물당기기’ 등도 제대로 보전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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