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暎根 주필·한동대 특임교수

오랜 세월을 살아가면서 감격스러운 일들을 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감명 깊었고, 살아 있는 교훈이 된 사건은 2013년 10월 8일 수갑 차고 연행되는 국회의원의 모습이었다.

미국 민주당 소속 찰스 랭글(뉴욕주) 하원의원이 도로 불법 점유 혐의로 경찰에 연행되었는데 그것도 그냥 연행된 것이 아니라 수갑을 채워 연행한 현장 사진이었다.

국회의원이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백주 대로상에서, 수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갑까지 채웠을까하여 내용을 알아보니 사건의 내용은 이러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불법 체류자 1100만 명에게 단계적으로 시민권을 부여하기 위해 이민법 개정안을 국회에 재출했으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공화당의 반대로 법안 통과가 지연되자 시민 200여 명과 함께 워싱턴 DC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했다. 이때 도로를 불법 점유했다는 혐의로 체포된 것이다.

한국인의 상식으로 본다면 현역 국회의원을 수갑 채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며, 더욱이 도로를 점유했다 하여 체포하다니 어처구니 없는 경찰의 만용으로 단정했을 것이다.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5위 안에 들어가고 차량 대수가 제일 많은 서울, 러시아워 때는 살인적인 정체를 자랑하는? 서울에서 평일에도 도로를 공공연히 점유하고 있는 불법 시위가 다반사임에도 경찰이 강제로 해산하였다가는 목이 백 개라도 견디기 어려울 것쯤은 한국 사람이면 다 안다. 그런데 전직도 아니고 현직 국회의원을 체포, 수갑까지 채워 연행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불법 시위의 상징적 사건인 ‘2015년 민중 총궐기’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2015년 11월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과히 충격적이었다. 민노총이 주도한 시위대는 제지하는 경찰관 100여 명에게 부상을 입혔고, 50대의 경찰 버스가 파손 됐다.

시위대는 쇠파이프와 죽봉으로 경찰을 공격하였고, 철제 새총에 공업용 볼트를 장착하여 경찰에 조준 사격까지 하였다. 수세에 몰린 경찰은 이 현장을 제압하기 위해 살수차를 사용하였는데 이 거센 물대포를 맞은 시위자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사람이 죽었으니 안타까운 일이었고, 응당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위가 평화적으로 진행되었다면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인데, 경찰로서는 직무집행법에 따라 폭력을 진압해야할 의무가 있으니 살수를 하였다.

당초 유감을 표현한 것은 인간적인 예의에서이고, 법적으로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라 공권력을 행사한 것이니 정당한 방위수단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경찰 수뇌부도 ‘정당한 공권력 행사’라고 단정했다.

사인을 두고 해석이 여러 면으로 갈라지더니, 정권이 바뀌자 경찰 수뇌부가 앞장서 ‘경찰이 잘못했다’라고 사과했다. 온당한 장수라면 직무를 정당하게 수행한 경찰관은 책임이 없다. 책임을 물으려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선언하고 스스로 물러가야 한다.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정권의 눈치나 보는 이런 수뇌부를 믿고 어떤 경찰이 자기 직분에 충실하게 봉직하겠는가. 대한민국 경찰관은 쓸개도 없단 말인가!

결국 경찰이 스스로 위법을 시인하였으니 검찰이 기소할 수밖에 없었고, 당시 살수를 담당하였던 네 명 중 세 명이 유죄를 받았으며 그 중 한 명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퇴직하게 되었고, 다른 한 명은 700만 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같은 처지에 놓인 2000여 명의 경찰관들은 어렵고 고통 속에 고뇌할 동료들을 위해 스스로 모금을 시작, 3주 만에 1억 원을 모아 벌금을 대납을 하였다.

또 문제가 터졌다. 지난 달 22일 오후 3시 50분 쯤, 민노총 금속노조 유성지회 조합원 10여 명이 사무실에 쳐들어와 이 회사 노동 담당 상무를 감금한 채 1시간여 동안 집단폭행을 가한 사건이 발생했다.

회사는 사건 발생 즉시 구조 요청을 6차례나 하였다. 출동한 20여 명의 경찰은 제지는커녕 현장을 지켜보고만 있었다는 것이다. 1시간 동안 계속되는 폭행으로 안와 골절, 코뼈 함몰, 치아 손괴 등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이들은 폭행을 하면서 “너를 죽이고 감방 가겠다”라고 하면서, “너희 식구를 가만 놔둘 줄 아느냐”라고 가족문제를 갖고 협박까지 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그동안 민노총만을 옹호하였던 정부에 국민적 비난이 봇물 터지듯 하자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28일 국회에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저지 못한 경찰도 책임”이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헛소리만하고 있다고 국민들이 웃고 있다. 만약 강제로 현장을 쳐들어갔다가 노동조합원들을 다치기나 한다면 무슨 쇼를 할지 모르는데, 그때 또 경찰청장은 사과나 하고 책임은 부하에게 돌리는 비겁한 작태를 연출한다면 출동한 경찰관만 희생되는데 섣부른 짓을 하겠는가? 현장에 출동하였던 경찰이 이렇게 말하더라는 보도다. “노조 잘못 건드렸다가 오히려 법 집행한 경찰에 화살이 돌아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경찰제복에 대한 국민적 존경을 허물어뜨린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정부는 물론 우리 국민 모두가 숙연한 마음으로 자성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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