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옆 부서의 K선배가 저녁식사를 하자고 한다. 올 연말 명퇴를 하게 되었다며 퇴직인사라고 한다. 두어 달 간 얼굴이 보이지 않더니 그동안 이런 일이 있었구나. 바쁘다보니 신경쓰지 못했는데...
그는 아직 정년이 남았는데 1년을 손해를 보며 나간다고 한다. 마침 다른 곳에 일자리가 생겼는데 수입은 지금보다 조금 못하지만 대신 경력을 인정받고 또한 몇 년을 더 일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좋은 조건으로 갈아탈 수 있다니 행운인 듯하다. 평소에 덕을 많이 쌓았기 때문일까?
나도 정년이 몇 년 남지 않았기에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퇴직할 때는 어떤 상태일까.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후회 없이 마치면서 “다 이루었다”라고 선언하는 것인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다른 자리를 알아봐야 한다. 과연 갈 곳은 있을까.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하기에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종신직이 아닌 이상 정년퇴직이든 명예퇴직이든 떠나야 한다. 아무리 지옥 같고 전쟁터 같았던 일터라고 하더라도 인생의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곳이기에 물러나면 허전할 수 밖에 없다. 가족의 생계를 벌었고. 인간관계를 형성한 터전이었다.

퇴직하는 사람은 스스로 그만두기도 하지만 보통 어쩔 수 없이 그만둔다. 운동선수처럼 노후에 기량 쇠퇴로 자연스럽게 은퇴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나이 때문에 강제로 물러나야 한다. 명퇴도 사실상 나이 때문에 선택하는 것이다. 이들은 아직 몇 년 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일을 더 할 수 있는 나이인데 강제로 떠밀려 나가게 되니 상실감이 클 것이다.

퇴직은 두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먼저 조직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이다. 직장인은 소속기관의 규정상, 도의상, 시간제약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퇴직은 이런 각종 제약에서 해방이다. 그동안 못했던 일을 할 수 있다. 나는 이런 제약에서 벗어나면 시도해 보려고 몇가지 일을 준비해 두었다.
그러나 동시에 소속감이 상실되어 안정적이지 못하게 된다. 제약이 없어지는 대신 조직의 보호와 지원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들이 오히려 더 많아진다. 현 직장 외에 다른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충격이 더 클 듯 하다.
특히 정년을 채우고 퇴직하게 되면 당장 노인문제에 직면한다. 최근 우리국민의 평균수명이 늘어나서 100세까지 살 수도 있다고 하는데 그때까지 무엇을 하며 보낼지 결정해야 한다. 노후의 재앙 중에‘준비 없이 너무 오래 사는 것’도 있다는데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노년층의 경제문제는 사회 경제적인 문제가 된다. 퇴직 후에는 고정적인 수입이 없다보니 정상적인 경제생활이 불가능하고 소비가 위축될 수 밖에 없다. 노인층 절반이 빈곤층이라는 기사도 있다
많은 한국인이 첫 번째 직장에서 퇴직한 후에도 소득문제 등으로 강제로 일을 계속해야 한다. 인생이모작이라고 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다. K선배처럼 괜찮은 이모작을 할 수 있다면 정말 행운이다. 아무래도 2모작이 1모작만큼 될 수는 없다. 이전과 비교하면 형편없는 조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젊은 청년들과 일자리를 두고 경쟁까지 해야 한다.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는 경단녀 만큼은 아니지만 정년퇴직하는 직장인에게도 경력단절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 퇴직 후 너무 오랜 기간 동안 생존하기 때문이다.

맥아더가 말했던가.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 갈 뿐”이라고. 직업전선의 베테랑들은 이렇게 사라져간다. 지금까지 사라져 간 많은 인물들은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

K선배 ! 퇴직하더라도 가끔 얼굴은 보도록 합시다. 그때는 내가 밥을 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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