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엄성이 집단이나 제도에 속할 수 없고, 오직 개인에게 속한 가치라 한다면, 간단히 해체되고 만다. 개인에 속한 불가침의 가치인 존엄성이란 그냥 기본권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를 방해한 혐의를 받는 고 변모 서울고검 검사가 투신한 지 1년여 만에 세월호 유가족 사찰 의혹으로 수사를 받던 이재수 전 기무사사령관이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자 검찰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 전 사령관은 “모든 것은 내가 안고 간다”며 “모두에 관대한 처분을 바란다”는 유서를 남겼다. 이 전 사령관의 지인은 “짜맞추기식 수사를 했다고 억울해 했다”고 전했다.

동양고전에 동몽선습이란 책이 있다. 천자문 다음에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책이다. 여기에 “하늘과 땅 사이 만물이 있는 가운데, 오직 사람이 가장 귀하니, 그 귀하다는 것은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오륜이 있기 때문이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 지구상에서 사람보다 더 귀한 동물은 없다. 그런데 사람이 사람을 죽게 한다. 법에 의해 형벌을 가한다면 죄인이 벌을 받는 것은 죄질에 따라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불법이요, 인권유린이요, 권력남용이다.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한창 활동할 60세의 나이에 13층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박근혜 정부시절 기무사령관으로서 세월호 사건 때 유족에 대하여 부당한 조사를 했다고 검찰에서 온갖 조사를 받고 완전 죄인 취급을 당하고, 촛불집회 때 비밀문건 만들어 계엄령을 선포하려 했다고 군대를 죄인 취급하고 검찰이 장시간 강도 높게 뒤졌지만 결과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그 결과 기무사령부는 해체됐다.

적폐를 청산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아까운 목숨을 앗아가는 현실을 볼 때 우리사회에서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 존재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11일 발인을 마친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빈소에는 예비역들과 보수 정치인들의 발길이 이어졌지만 현역 군인들은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를 낳을까봐 현역들이 이 전 사령관의 빈소를 찾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고 본다.

세월호 유가족 사찰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다가 세상을 떠난 고(故)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이날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과 김병관 전 국방부 장관 후보자, 심재철·홍문종 자유한국당 의원,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 유가족, 지인, 동료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박 회장은 이 전 사령관과 함께 지난 1977년 중앙고를 졸업하고, 육사에 입학한 고교·육사 동기로 절친한 사이였다. 지난 일은 시간이 지나면 밝혀지겠지만 살아있는 가족들에게는 남은 시간들이 고통의 기억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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