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세상을 떠난 지 8주기를 맞았다. 고인은 2011년 12월 13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윤동진 우석대학교수가 쓴 철강왕, 박태준의 경영이야기 <최고기준을 고집하라>를 읽어보면 1968년 3월 6일, 포항제철 설립을 위한 발기인 대회를 개최하고 회사 정관을 확정했다고 나와 있다. 이어 4월 1일 역사적인 창립식을 거행했다.

그가 창립식에서 귀빈들 앞에서 한 약속. “우리는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여 최소의 경비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제철소를 건설할 것입니다.”라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는 자신을 포철에 던졌다. 1970년 4월 1일 박정희 대통령을 모시고 착공버튼을 누른 그는 황량한 모래벌판에서 맨주먹으로 시작, 불과 25년 만에 세계 제2위의 종합제철소를 만들었다. 그와 임직원들의 피와 땀의 결실을 지금 우리는 맛보고 있는 중이다.

그가 포스코를 경영할 때는 해마다 흑자경영을 갱신했으며, 1992년부터 포스코는 스탠포드, 하버드 등의 세계일류대학 연구소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포철의 급성장 요인은 간단했다. 바로 저비용으로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정직하고 정확한 관리를 추구하며, 삼고삼무(三高三無) 즉, 최고의 생산성, 최고의 품질, 최고의 낮은 비용 그리고 무결점, 무사고, 무낭비를 목표로 정하고 이를 2만 3천명의 직원들과 같이 실천한 것이다.

“목숨을 걸자. 실패하면 우리 모두 사무소에서 똑바로 걸어 나와 우향우 한 다음 동해바다에 몸을 던지는 거다” 포항 시민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우향우 정신’은 영일만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포스코를 이루려던 간절한 결의였다.

지금의 영일대 건물은 고 박태준 회장의 흔적이 곳곳에 남겨져 있다. 지곡단지는 하나의 거대한 공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원휴양소처럼 조성한 사원주택단지를 비롯한 의료센타, 효자음악당, 도서관 등은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려는 그의 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포스코 외에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 포스텍을 설립하여, 과감히 교육에 투자함으로써 포스텍은 명실상부한 선진국 수준을 능가하는 명문대학이 된 것이다. 현재 교수 대 학생 비율 1:5.6명으로, 이는 OECD 가입국가 평균 14.7명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으로서, 선진국 대학수준을 능가한다.

포스텍이 짧은 역사를 가진 학교로서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우뚝 솟을 수 있게 한 것도 모두 박태준 명예회장의 미래를 내다보는 탁월한 혜안 때문일 것이다. 추모 8주기를 맞아 포항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끼며 그의 업적을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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