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지난 봄 사무실에서 영농지원을 나갔다. 사과 과수원인데 본격적인 영농철이 아니라서 지난해에 설치했던 유인선을 제거하는 일이 주어졌다.
유인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가지를 철사로 묶어 수평이 되도록 하여 나무 내부로 햇볕이 잘들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꽃눈분화와 결과지 확보에 필요하다. 일정시간이 지나면 이것을 풀어줘야 하는데 우리가 할 일은 이러한 유인을 풀어주는 것이다. 특별한 기술은 없어도 되지만 일손이 많이 드는 작업이라 영농지원으로 적합한 듯 했다.

작업을 하면서 자녀교육을 왜 자식농사라고 하는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다. 그동안 막연히 자식농사를 잘해야 한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자식농사도 이런 차원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성장을 위해 비료나 거름을 주는 것이 중요하지만 가지유인처럼 공부를 할 환경을 만들어주고 방향을 정해주는 것도 필요한 듯 하다.
농작물은 스스로 과실을 생산하지만 최적의 상태를 위해 각종 조작을 한다. 유인도 그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적과, 봉지씌우기 같은 작업을 추가로 한다. 이런 작업은 전문성이 필요하여 우리같은 자원봉사자가 하기는 어렵다.

늦게 자녀를 둔 탓에 아직 고등학생인 두딸이 있다. 주말에 학원에 가는 딸들을 픽업하느라 시간을 많이 빼앗기지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해주고 있다. 자식농사에서 가지유인으로 보아도 될 듯하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없는데 그이상으로 무엇을 더 어떻게 해줘야 할지 고민이다. 공부를 하라고 지도를 하는데 너무 극성맞게 하면 자녀의 행복할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냥 방치할 수도 없다. 말을 물가에 데리고 갈 수는 있어도 강제로 물은 먹일 수는 없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아예 물가에도 안가려고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청소년기에 알아서 공부를 하는 자녀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또한 교육관련 전문성이 없는 부모가 직접 가르치지 못하고 학교나 학원에 보내는데 그냥 맞겨만 둘 것인지 학교나 학원에서 어떻게 하는지 일일이 확인해야 할지 그것도 어느 단계까지 할지 애매하다. 학부모들은 교육문제에서 약자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까지 이런 어려움 속에서 자식농사를 지어왔다. 과연 나의 자식농사는 잘 지은 것인가. 평가는 상대적이다. 그리고 내가 잘했느냐 여부보다 딸에게 좋은 결과인지 나쁜 결과인지 여부가 중요하다.

언젠가 대입의 성공요인으로 아이의 재능, 할아버지의 경제력,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었다. 아빠의 무관심은 어쩌면 아마추어가 섣불리 달려들어 망치지 말라는 의미같다. 그리고 인내를 달리 표현한 듯 하다.
아빠들은 잘 알지도 모르면서 자녀들이 못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성향이 있다. 결과만 가지고 자신의 입장에서 자녀들을 다그친다. 그러나 자녀는 부모의 분신이 아니다. 독립적인 인격체다. 부모가 원하는 만큼 성과를 내지 못할 때 아쉽기는 하겠지만 부모의 눈높이에 맞추면 안된다. 어설프게 관여하다가 반발을 부르게 되어 오히려 자녀를 망치게 된다.

자식농사는 일반농사와는 목적이 다르다. 자식을 통해 돈을 벌거나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잘되라고 농사를 짓는 것이다. 즉 농사의 대상과 목적이 모두 자녀에게 있는 것이다. 투입대비 산출을 따진다거나 반려동물처럼 나의 즐거움을 위하여 자녀를 양육할 수는 없는 것이다.

수능을 치른 큰 딸이 대학을 결정하느라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없다. 그저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해줄 수 밖에..

딸이 나에게 어떤 자녀가 되어주기를 원하냐고 묻기에 행복한 딸이 되어주었으면 한다는 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출세를 해도 좋고 부자가 되어 부모를 봉양해 주어도 좋지만 그보다는 행복함을 누리는 딸이 되어야 진정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자식농사의 방향이다. 딸의 인생을 살아주지는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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