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暎根 주필ᐧ한동대 특임교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연말연시에는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 것이 일반적인 상례다. 그럼에도 그냥 묵과하기에는 너무 어처구니없는 망발들이 난무하고 있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지난 12일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이 학술회의를 개최하였는데, 주제는 남북평화협정이다. 초안을 담당한 한 연구원은 2020년까지 북한의 비핵화가 50% 정도 진척되면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또 90일 내에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해 남 ᐧ 북 ᐧ 미 ᐧ 중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 관리위원회를 설치하자는 것이다.

이 연구원이 무슨 근거로 이런 주장을 하였을까? 북한이 가진 핵이 얼마인지 가늠조차 안 되는데 50% 정도 비핵화가 이루어지면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근거는 어떻게 산출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4월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이 합의한 공동선언인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소중한 출발”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 발표가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한반도비핵화’란 남북이 다 핵무기를 갖고 있을 경우 이를 모두 폐기하는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지 남한에는 핵무기가 전연 없는데 어떻게 한반도라 할 수 있느냐? 원칙대로 합의한다면 ‘북한 비핵화선언’이라고 해야 한다.

1992년 1월 21일 남북한 간에 체결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은 1991년 2월 27일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남한 내 주한미군 기지에 배치되어 있던 지상 및 해상 발사 단거리 전술핵무기의 전면 철수에 이어, 1991년 12월 18일 노태우 대통령의 핵무기 부재선언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현재 남 ᐧ 북 ᐧ 미간에 진행되고 있는 핵무기 문제는 1992년에 체결된 조약을 위반하고 핵폭탄과 미사일을 생산하여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북한의 책임문제인데, 왜 ‘한반도비핵화’란 어휘가 등장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북한은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만으로도 미국과의 흥정에 충분조건이 되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지난 2월, 신음동 미사일 시험장에서 개발에 성공한 ICBM 화성 15형은 미국 동부지역까지 타격을 입힐 수 있는 핵미사일이며 그 보유량만도 수십 발 이상이다.

이 미사일에 대한 미국의 공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기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다. 그것은 북한이 미국의 대북압박정책에 더 이상 버티기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공멸작전을 전개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두 개 도시가 북한의 핵 공격을 받는다는 이 끔찍한 가상 시나리오를 상정하였을 때도 미국은 한국의 보호를 위해 지금처럼 한미방위조약을 끝까지 고집할 것인지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한국은 지금 몽유병자처럼 꿈속을 헤매고 있다. 북한은 군사문제에서 한국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데 반하여 우리는 재래식 전쟁무기에 있어 한국이 월등하다고 하여 북한과 상대가 된다고 보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어처구니없는 망상이다.

지난 2월 8일 북한 창군기념 열병식에 처음 등장한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한국에 설치된 사드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미사일로서 종내 북한이 개발에 성공하여 다량 갖고 있는 미사일과는 그 성격이 다른 것이다.

물론 이 미사일은 중국의 것을 모방 제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편심 탄도(eccentric ballistic)라 하여 아주 낮은 궤도를 비행하는 항법으로 280~450㎞ 이상 비행이 가능하며 한 ᐧ 미 미사일 방어망을 뚫을 수 있는 장점을 가진 저고가 특성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우리는 온당한 정신이 아니라 북한의 조종에 허수아비 춤을 추고 있다. 더욱이 북한의 비핵화가 50% 진척될 경우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이후 90일 내에 유엔군 사령부를 해체하자고 주장한 연구원의 논리는 자신의 연구물이 아니라고 보인다.

통일연구원에 연구위원으로 근무한다면 이 분야에서 상당한 지적 내공을 갖고 있을 것인데, 어떻게 이런 초안을, 그것도 학술회의에 제시하였을까 의문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이 만약 철수한다면 무슨 힘으로 북한의 공격을 방어할 것인가? 우리가 주장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가 아니면 어떤 대안도 수용할 수 없다는 확고한 의지가 일관되게 지속되어야 한다.

북한은 단 1%의 비핵화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주장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0일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 위협을 완전히 재거하는 것이 먼저’라고 했다. 이것이 북한의 본심이다.

평화란 말로도 글로도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종잇장에 불과한 조약 ᐧ 협약 ᐧ 선언으로 얻어지는 평화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진정한 평화는 대등한 힘이 갖추어졌을 때만이 가능하다. 우리가 그 힘을 가질 때까지 매달릴 곳은 미국의 핵우산뿐이다. 씨알머리 없는 미군철수니, 평화협정이니 하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는 이제 그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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