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수 실바노 계산성당 주임신부

기다림과 설레임으로 한 해를 살았다. 한 해의 삶 안에서 만나고 싶은 여러분들을 기다렸고 어떤 모습으로 또 한 해의 성탄을 맞이할까로 설레이기도 했다. 때로는 기쁨으로, 때로는 아쉬움으로, 때로는 아픔으로….

하지만 그 기다림과 설레임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기 위한 것에 비하면 미약하기 짝이 없는 기다림이고 설레임일 것이다.

아직도 아픔을 다 해결하지 못한 사고와 그와 연관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손길이 필요한 연말, 여러 가지 사고들로 겪어야 하는 고통, 정치와 경제의 여건들이 행복을 빼앗아 버리고자 하는 환경들로 몰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이 모든 것을 사랑으로 받아주시고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와 함께 하도록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다.
그 기쁨을 오늘 우리는 함께 나누고 있다. 성탄이다. 함께 행복함을 나누자! 메리 크리스마스.

어느 대중가요 가수가 부른 노래중에 「누가 나와 같이 함께 울어줄 사람있나요」라는 노래가 있다.(동행)

우리가 살아가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 찾아가서 눈물 흘릴 수 있는 분!
힘들고 답답하여 고생스러워도 붙잡고 매달릴 수 있는 분!
그런 분이 우리의 위로와 희망으로 함께 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
가끔씩은 우리가 고개 돌려도 함께 해주시고 기다려주시는 자비로운 사랑이신 분이 세상에 오셨다. 그것이 성탄이다.

그리고 그 자비로우시고 용서와 화목과 평화를 위해서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그분이 바로 구세주이시다.

그 구세주가 「구유」에 누워계신다.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고을에 짐승들이 먹고 자는 마구간 구유에 누워계신다.(외양간 출신) 세상을 구원할 구세주가 가장 초라하고(낮고) 겸손된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다.
성탄의 의미를 깊이 생각게 하는 대목이다. 예수님의 탄생은 목자들에게 먼저 전해진다.

목자들, 가난하지만 순박하게 사는 사람들! 세상에 대한 욕심보다, 사랑이 그리운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성탄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구세주의 탄생은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그들이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를 경배한다.

「구유」가 뭐하는 것인가? 짐승들이 밥 먹을 때 사용하는 그릇이다. 그 그릇에 구세주가 누워계신다.「구유」가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빈 구유에 구세주가 나셨다. 빈 구유에 예수님이 계신다.

이제 예수님은 당신의 모든 것 몸과 피, 생명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실 것이다.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시는 것이 예수님, 구세주가 세상에 오신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구세주가 구유에 누워계심을 묵상해야 한다. 그 구유가 예수님을 담고 있다면 내가 바로 예수님과 함께 하는 구유여야 하기 때문이다.

성탄은 내 마음에 빈 구유를 만드는 것이다. 겸손하게 나를 낮추고, 사랑하고, 봉사하고, 가난한, 어려운 환경의 이웃을 돌보고 움켜잡고 있는 세상의 많은 것들에서 자신을 비울 수 있어야 구유를 만들 수 있는데….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담아 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재물에 대한 강한 욕심, 일등만을 고집하는 경쟁,내 삶의 화려함을 추구하고픈 마음, 다른 이들에 대한 이해의 부족, 마음, 시기, 질투, 강한 자존심, 무엇보다 세상의 것들에 치우쳐서 자주 잊게 되는 하느님.

너무 많은 것들! 너무 세상적인 것들! 너무 하느님 사랑과 멀어져 있는 것들로 가득 차서 예수님이 자리할 공간이 없는 것은 아닌지?

성탄은 자신의 마음에 가득찬 세상의 것들을 쏟아버리고 하느님을 담을 수 있는 사랑과 용서와 겸손과 봉사의 구유, 은총과 진리를 담을 수 있는 구유를 만드는 것이다.

위대하신 하느님이 초라한 인간의 모습으로 자신을 낮추어 내려오시는 것, 그것이 바로 빈구유의 신비인 성탄이다. 하느님이 사랑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시는 것이 성탄이다. 자신을 겸손하게 가꾸고 예수님을 맞이하는 것이 성탄이다.

오늘 이 시간 주님이 우리 마음에 태어나도록 내 마음에 가득차 있는 많은 것들을 다 털어버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자리에 예수님만이 계셨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내 삶의 울타리 안에, 내 삶의 그릇이, 하느님을 담는 빈구유가 되어 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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