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아내가 수술을 받고 입원을 하였다. 간병을 하면서 같이 입원한 다른 환자들을 보았다. 장기입원 환자도 있었다. 항암치료로 머리털이 다 빠져 민머리인 여성환자도 보인다. 시한부생명의 중환자도 있을 것이다.

병마에 지치고 찌든 모습들이다. 회복할 희망이 없거나 장기간 투병으로 더 이상 삶에 대한 의욕이 없는 것 같았다. 측은한 생각이 들었지만 섣부른 동정은 금물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나와 같은 잘 모르는 외부인이 어설프게 위로하다가 오히려 절망만 안겨줄 수 있다.

병실 창밖으로 가로수가 보인다. 겨울철이라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는데 바삭 마른 잎새가 붙어있는 나무도 있다. 지금 같은 겨울철이면 낙엽이 다 떨어져야 하는데 아직 매달려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다가 학창시절 읽은 오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가 생각났다. 오헨리의 소설에는 따뜻한 휴머니즘 속에 놀라운 반전이 있다. ‘마지막 잎새’에도 늙은 화가가 목숨을 걸고 그린 나뭇잎 벽화가 주인공에게 삶의 희망을 준다는 휴머니즘이 있다.
잎새가 떨어지면 자신의 생명이 다한다는 논리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언젠가 떨어질 나뭇잎이 죽음을 앞둔 자신의 운명이라는 감정이입이다. 심신이 쇠약해진 환자로서는 별의별 유추가 될 것이다.

겨울에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은 자연현상이다. 계절이 바뀌니까 물질대사의 작용으로 나무에서 자연스럽게 분리된다. 요즘 낙엽은 낭만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청소에 지장을 주는 귀찮은 존재다. 특히 플라타나스 가로수 낙엽은 크고 양도 많은데 늦게까지 남아있어 거리의 흉물이 되고 있다.
요즘 가로수 낙엽이 오래간다. 기상이변 때문일까.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조명등이나 대기의 성분 등 요인이 많다고 한다. 결국 환경탓이다. 그러나 나무에 오래 매달려 있는 것은 생명력의 모습이다. 생명은 끈질기다. 환경변화에 적응하며 생존하는 생물의 본능이다. 외부의 영향에 좌절하여 쉽게 죽는 생명은 끈질김이 아니다.

이런 생명력의 다른 사례로 포항 철길공원의 불의 정원 가스불이 있다. 불꽃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고 있다. 재작년 붐에 불이 붙은 후 곧 꺼질 것 같았는데 벌써 2년이 다되도록 계속 타고 있다. 불꽃이 약해질 기미도 없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앞으로 최소 5∼10년 정도 계속 탈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포항에 갈 때마다 불의 정원에 가본다. 포항시 관문에 위치해 있어서 찾기도 쉽다. 나처럼 많은 사람이 찾게 된다면 포항의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불의 정원이 포항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오랫동안 존속하기를 기대해 본다. 과거의 번영을 잃지 않는다는 상징성이 되었으면 한다. 요즘 포항시 경제가 어렵고 인구가 줄어든다는 우려가 있지만 포항에는 저력이 있다. 불꽃이 포항판 ‘마지막 잎새’로서 시민에게 희망을 준다는 설정은 억지일까.
특히 지난 2017년 11월 발생한 지진과 그후의 복구과정에서 트라우마로 지친 포항 시민들이 불꽃의 지속성을 보고 심신을 달래볼 것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지진을 계기로 포항이 좀 더 발전된 모습으로 재탄생할 것도 기대해본다. 최근 문화도시로 예비지정이 되었다고 하니 철강산업 일변도의 도시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생명력을 지닌 도시가 될 것이다.
지금은 떠나 있지만 포항 출신으로서 포항시가 예전의 위용을 되찾고 다시 성장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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