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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경산책]황금돼지 복이필선 수필가
   
황금돼지 띠 해인 올해, 유난히 막힘없이 걸림 없이 잘 살라고 미리 아픔을 주는 걸까, 내 안에 든 황금돼지는 육십갑자 한 바퀴를 돌기가 그다지도 버거웠을까, 지난 연말부터 시작한 병원 출입이 유난히 잦다. 앓다 보니 한 해의 끝맺음도, 시작도 없이 구렁이 담 넘듯 어물쩍하게 황금돼지해인 새해로 넘어와 있다.

지난해, 마지막 달이었다. 긴 몸살 끝에 잠시 편안해지나 싶던 그 날 저녁, 오른쪽 가슴 위가 담 결린 듯 뜨끔거렸다. 반대편인 등 뒤쪽도 결려서 파스를 붙이고 잤다. 밤이 깊어질수록 통증이 심해 응급실로 가야 하나 마나 망설이다 이튿날, 병원 문을 열기 바쁘게 동네 의원을 찾아갔다. 수포가 돋아나지는 않았지만, 대상포진 같다며 약을 지어줘 먹었으나 별수 없었다.

결국 다음 날은 입원하기로 작정하고 시내병원에 갔지만 대상포진이 아니라 했다. 어깨가 문제인 것 같다며 정형외과로 안내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정작 정형외과에서도 또 대상포진 같다고 했다.

오른쪽 가슴과 팔을 압박붕대로 꽁꽁 매줬으면 싶을 만큼 한 걸음의 움직임에도 살을 에는 통증이 따라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돌아다녔지만 계속 '대상포진 같은데…' 라는 소리만 들었을 뿐, 딱히 검사상 나타나지 않으니 입원대상조차 안 된다 했다. 병원 규칙이 어떠하든, 돈 걱정하지 말고 무슨 검사든 해서 나를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할 때는 병원 직원들은 그저 가슴 따위도 없이 근무만 하는 일터일 뿐이라는 생각에 야속했다. 울며 사정하듯 제발 입원시켜달라고, 통증 좀 잡아달라고 호소를 했다.

하지만 그 병원에서 역시 갖은 검사를 해도 병명이 나타나지 않는다며 상급병원으로 소견서를 써 주어 병원을 또 옮겼지만, 퇴원 때까지도 딱히 병명을 알아내지 못했다. 병명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어림없는 신장 외과 의사가 나를 담당했고 호흡기내과 5인실 병동에 입원했다. 그중 나는 가운데 침상에서 한 사흘은 진통제에 젖어 죽은 듯 잠만 자면서도 깰 때마다 통증 없으니 살 것 같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 큰 통증이 사라지자 주위 환경에 불만했다. 나를 뺀 네 분의 할머니가 팔십 세 이상이었고 하나 같이 가래 흡입기를 사용해야 하는 환자들이었다.

처음엔 인간의 최후가 서글프기 짝이 없구나 싶었다. 저토록 구차하게 생을 끝내야 하는 상황이 안쓰럽고 동정심이 일었다. 하지만 날이 지날수록 내 통증은 가벼워지는 대신 할머니들은 끼니때마다 가래 흡입기 사용을 했다. 환자의 간병인이 엉덩이를 들기 전에 내 몫의 흰죽에다 찬물을 부어 훌 마셔버리고는 식판을 내밀었다.

게다가 시시때때로 찬송가를 불러 잠 못 들게 하는 치매 끼를 동반한 할머니 때문에 귀마개를 만들어 끼고 잤다. 그러다 좀 견딜만하면 여기저기 기저귀를 가느라 병실 안은 변 냄새로 가득 찼다. 결국 내리 사흘을 밤낮없이 울었다. 우울증이었던 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그치려 해도 자꾸 서글펐다. 처음에 가졌던, 인간 자체의 존엄성으로 보았던 환자에 대한 배려는 이미 눈곱만큼도 없이 오직 그 병실을 벗어나고자 애를 쓸 뿐이었다.

병실을 옮기자 천국을 만난 것 같았다. 이불을 얼굴 끝까지 끌어 덮지 않고서도 잠들 수 있고 먼 곳에 눈이라도 내리는지, 낮게 보이는 하늘을 보며 창밖 풍경에 잠시 낭만에 젖기도 했다. 그 말랑한 기분도 잠시, 병실이 없다며 병명조차도 모르고 쫓기듯 퇴원을 했다. 그 때문에 의술 좋은 이 시대에도 나는 계속 통증을 움켜쥐고 있다. 예전 왼쪽 옆구리에 물집이 나타나 대상포진을 앓던 그때와는 판이한 통증으로 고생 중이다.

황금돼지띠 새해 첫날, 지인들이 각 곳에서 해돋이 사진을 찍어 보내온 풍경을 보고서야 새해로구나 실감을 할 뿐이었다. 만사가 내가 있고서야 천하의 모든 것이 있음을 여실히 증명된 걸 보더라도 겸손에도 정도가 있는 모양이다. 입으로만 내뱉은 '겸손'은 나의 허세임이 다 드러났다. 인간인 내 안에 든 간사함 역시 큰 통증만 잡아주니 천국을 만난 듯했지만, 시간 지날수록 남은 아픔들이 속속 기어 올라와 달래 달라 만져 달라 보채자 타인의 아픔쯤은 또 잊어버린다.

육십갑자 한 바퀴를 크게 돌았을 내 삶을 돌이켜보면 큰 아픔 없이 살았다 싶다. 더불어 인생 백 세 시대의 그림을 크게 그려놓고 보면 청년기와 노년기 사이의 중년을 이제야 맞이하는 게 아닌가 싶다. 매사 덤벙덤벙 대충 살았던 이전과 달리 좀 더 진지하게 인생을 대할 일이다.

특히 조심 없이 만만하게 부린 내 몸뚱이가 하는 말을, 트집을 잘 챙겨 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육십갑자를 한 바퀴를 돌아 회갑을 맞이했으니 철이 들라는 모양이다. 아픈 바람에 인생에 대해, 삶에 대해 한 번 더 짚어 가는 기회가 되었다.

흔히 돼지띠는 복이 많다고들 한다. 돼지꿈이라도 꾸고 나면 부와 행운의 상징이라며 복권을 사라고 부추기는 소리를 듣기도 예사다. 그렇다면 59년 돼지띠인 나는 복이 많은가? 자문해 본다. 그 답은 진정한 복은 자신의 언행이 짓는 일이라는 전제 아래 황금돼지가 주는 복은 내 인생의 덤일 뿐, 내가 가꾸기 나름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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