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태 편집국장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其意自見)은 책이나 글을 백 번 읽으면 그 글이 담고 있는 속뜻이 저절로 이해된다는 뜻으로,「삼국지(三國志)‘위서(魏書)’13권(卷)」‘종요화흠왕랑전(種繇華歆王朗傳)’에 배송지(裵松之,372~451)가 주(注)로 덧붙인 동우(董遇)의 고사(古事)에서 비롯된 말이다.

여기서 백 번이란 그 뜻을 알 수 있을 때까지 되풀이해서 읽는다는 것을 나타내며, 이로써 이 말은 무엇이든 끈기를 가지고 노력하면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동우는 후한(後漢) 말기 헌제(獻帝, 재위 189~220) 때부터 삼국시대(三國時代) 위(魏)의 명제(明帝) 조예(曹叡, 재위 227~239) 때까지 활동했던 학자(學者)로서 자(字)는 계직(季直)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유달리 학문을 좋아하여 늘 옆구리에 책을 끼고 다니며 독서에 힘을 쏟았다.

그는 「노자(老子)」나 「좌전(左傳)」에 주(注)를 달았는데, 특히 「좌전」에 대한 그의 주석(註釋)은 널리 알려져 당(唐) 시대까지 폭넓게 읽혔다고 한다. 그가 「좌전」에 주석을 써 넣을 때에 붉은 빛깔의 주묵을 사용했는데, 이때부터 ‘주묵(朱墨)’이라는 말이 어떤 글에 대한 주(注)나 가필(加筆), 첨삭(添削)을 뜻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후한 헌제 때인 건안(196~220)초년(初年)에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황문시랑(黃門侍郞)이 되었으며 헌제에게 시강(侍講)을 하여 신임을 받았다. 위(魏) 명제 때에는 시중(侍中)과 대사농(大司農)의 벼슬에 이르렀다.

학문에 대한 동우의 명성이 높아지자 그에게 배우겠다는 사람들이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을 선뜻 제자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배움을 청하자 그는 “마땅히 먼저 백 번을 읽어야 한다. 책을 백 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드러난다(必當先讀百遍, 讀書百遍其意自見)”며 사양했다.

그 사람이 “책 읽을 겨를이 없다(苦渴無日)”며 다시 가르침을 청하자, 동우는 “세 가지 여가만 있으면 책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當以三餘)”고 답했다. 옆에서 듣던 사람이 삼여(三餘), 곧 세 가지 여가(餘暇)가 무엇인가를 묻자, 그는 “겨울은 한 해의 여가이고, 밤은 하루의 여가이고, 오랫동안 계속해 내리는 비는 한 때의 여가(冬者歲之餘,夜者日之餘,陰雨者時之餘也)”라고 대답했다.

좋은 책을 곁에 두고 반복해서 읽으면 자신도 모르게 그 책 속의 인물을 닮아가게 간다. 나는 책은 최고의 친구라고 생각한다. 외로울 때면 외로움을 달래주고, 기쁠 때는 기쁨을 함께하고, 힘들 때는 용기를 북돋워 주고, 나의 지식을 인정해주고, 확인시켜 주는 유일한 친구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은 책을 친구로 사귀었다는 것이다. 오랜 친구, 새 친구, 다양한 분야의 친구가 있어서 내 삶이 윤택하고, 평화롭고, 행복하다. 그 어떤 사람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내 영혼을 치유해주고,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친구. 책 친구가 있어서 너무너무 일상이 감사하다.

아내는 방안에 박혀 책만 읽지 말고 밖에 나가 대화가 되는 친구를 사귀라고, 집 안에서 책만 보는 내가 짜증난다고 말하지만 책을 읽고 있으면 세상 어떤 것도 부럽지 않으니 어쩌란 말인가? 책은 오랜 나의 벗이다. 책 속에서는 고인도 친구가 되고 산 사람도 친구가 되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마음만 먹으면 친구가 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도 아내는 골방 샌님이 되지 말고 세상 사람과 두루 사귀어 인간관계를 넓히라고 한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지만 책만큼 정직한 친구가 없기에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책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다. 나는 영원히 변치 않는 친구들을 매일 만날 수 있어서 즐겁고 기쁘다. 책은 펼쳐서 가르침을 얻게 되면 스승과 만나는 것이고, 교감하게 되면 친구와 만나는 것이다.

그러다가 책을 덮으면 쉬거나 상상력의 세계에 빠져드는 것이다. 책은 중독성이 없는 중독성의 세계다. 때로는 나를 책으로 덮인 감옥 속으로 나를 완전히 유폐시키고 싶다. 마키아벨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삶의 권태다”고 했다. 하지만 독서만은 삶을 충만하게 하는 에너지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심연이 존재한다. 그 간극을 메워주는 것이 바로 책이다.

노르웨이의 작가 헨릭 입센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인간이란 고독한 인간이다”고 했다. 키에르케고르는 자신의 존재를 고독에 비유하면서 “모두가 줄 속에 똑바로 서 있는데 자기만 혼자서 거꾸로 서 있는 오식”이라 했으며, 니체는 한 술 더 떠서 “고독은 나의 고향이다”고 했다.

누구도 고칠 수 없는 인간의 원초적인 절대 고독을 이해할 수 있는 친구가 책이다. 책을 오랫동안 친구로 삼은 사람은 가장 지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일에도 동요하지 않는 산처럼 산다.

한 번 주어진 우리의 삶. 겉으로는 수평선처럼 평온하되 머릿속에는 언제나 용광로가 펄펄 끓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생을 곁에 둘 수 있는 몇 권의 책을 친구로 사귀어 두고두고 만난다면 이 또한 즐거운 삶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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