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나 미술사학 박사

높은 빌딩에서 내려다보는 도시, 열린 창틈으로 바라보는 풍경, 넓게 펼쳐진 푸른 바다. 그리고 오가는 사람들, 늘 보아오던 대상도 카메라 앵글로 눈높이를 달리해 보면 또 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색다름이 있다. 바로 사진의 매력이다. 카메라 앵글에 잡힌 바다는 사진가의 바다가 된다. 화가의 그림이 화가의 자화상이듯이 렌즈로 그려낸 풍경은 그 작가의 관념이다.

밀폐된 방의 한쪽 벽에 구멍을 뚫으면 바깥 경치의 영상이 반대편 벽에 거꾸로 맺힌다. 유럽에서는 16세기 이전부터 이 원리를 그림 그리는 데 활용했다. ‘카메라 옵스쿠라(camera obscura)’는 한쪽에 렌즈, 다른 쪽에 거울을 붙인 나무 상자로 만들어 그림 스케치의 보조 수단으로 사용했다. ‘어두운 방’이라는 뜻을 가진 ‘카메라 옵스쿠라’는 카메라의 어원이다.

카메라 옵스쿠라의 광학 원리에 화학 원리를 합쳐 최초의 영구적인 사진을 찍은 사람은 프랑스의 니세포르 니에프스(Nicphore Nipce·1765-1833)이다. 니엡스는 유명한 판화들을 대량으로 복제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 결과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유다 역청’이라는 감광물질을 금속판에 발라 카메라 옵스쿠라와 같은 광학적 장치에 넣은 후, 빛에 노출시켜 복제가 가능한 그림의 상(畵像)을 얻게 되었다. 화가의 손을 빌리지 않고 순수한 빛의 힘으로 현실의 모습을 재현했다. 이것이 사진의 시작이다.

▲ 연필 없이 자연 스스로 그려지는 그림
사진은 빛에 반응하는 물질에 의해 만들어진 원본을 이용해 대량의 완전한 그림을 만들어낸다. 18세기 중반부터 화가와 과학자들은 자연, 또는 카메라 옵스쿠라 뒷면에 나타난 광경 그대로를 자동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장치를 갈구했고, 그 결과 1839에 사진술이 공식화되었으며, 카메라 옵스쿠라에 반사된 자연의 영상을 색깔은 불가능하지만 색조의 농담을 매우 세밀하게 복제해내었다. 예술과 과학의 결합이 가져다준 사진은 대상의 형태를 완벽히 잡아내었고, 영국의 사진가 톨벗은 “화가의 연필 없이 자연대상 스스로 그려지는 기법”이라 하여“감광 소묘기법”이라고 했다. 사진에 대해 ‘소묘’라는 용어를 붙였다는 자체가 바로 전통적 기법의 그림을 보다 더 완전체로 그려내려는 욕망이 사진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다부 바다
‘바다’는 자신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품는다. 바다는 시린 슬픔 간직한 자의 사연을 삼킨다. 그리고 내일을 꿈꾸게 한다. “다부 바다”하나의 주제를 놓고 지역에서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는 5인의 작가 김훈, 나호권, 안성용, 이정철, 최흥태는 송도, 구룡포, 영일대, 강구 바다에 사진이라는 공통된 신명으로 그 바다의 어제와 오늘을 이야기 한다. 5인의 사진작업은 바다를 끼고 살아가는 영일만 사람들의 숨결이다. 비록 카메라는 산업의 산물이지만 그것의 눈에 작가의 시선을 덧입혀 시간을 붙들고, 관념을 붙들고, 사람을 붙들었다. 인문학적 향기를 내뿜는 이들의 사진은 삶의 미학이자 예술이다.

한 때, 사진은‘신의 예술’이라 일컫는 자연의 형상을 절묘하게 그려내는 화가보다 더 정교한 자연 그대로의 자연을 재현하려했던 끊임없는 욕망의 산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히 사실적이고 복사가 가능한 이유로 오히려 예술로써의 자질을 의심받았다. 서양미술사에서 르네상스 이후 수백 년 간 자연을 재현해낸 회화 역시 사진의 출현과 함께 죽음의 위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1839년 빛을 이용해 자연을 더 완벽히 재현하려고 했던 사진의 출현이 공식화 될 즈음, 인상파로 시작되는 일련의 화가들은 오히려 빛을 이용해서 전통적 기법의 형상과 색채를 파괴하는 실험을 하였고, 사물의 본질,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며, 회화의 종말을 극복하면서 새로운 예술의 길로 접어들었다.


▲ 사진의 역사성 - 나호권, 최흥태, 안성용
사진의 1차적 역할은 기록이다. 19세기 이후, 역사는 더 이상 문자적인 기록에만 의존하지 않게 되었다. 사진기의 발명과 녹음·녹화 등의 기술이 개발되면서 역사기록의 방법은 매우 다양해졌다. 그리고 이러한 신기술은 어떤 의미에서 문자보다 더 효과적인 기록방법을 제공했기에 사진은 그 특성상 역사와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바로 시간의 각인이다. 우리가 보는 모든 사진에는 이미 지나가 버린 어떤 시각(時刻)이 각인되어 있다. 사진을 역사와 연계시키는 고리도 바로 이것이다. 사진이 흔히 입증의 수단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도 과거의 직설적인 기록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사진이 지닌 가장 큰 가치로 바로 현장 기록성을 꼽는다. 이 점이 역사가가 기술하는 ‘역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역사가의 기록이 사후적인 것임에 비해 카메라에 의한 기록은 현장에 즉한 것이다. 이 현장성이야말로 사진 고유의 특성이며 사진의 역사성의 근거이다. 나호권, 안성용, 최흥태는 그들의 시선에 담긴 지극히 객관적인 소재, 객관적인 풍경 속에 그들 각자의 기록적 언어를 지니고 있다.

나호근의 <강구>은 영덕 오십천과 접하는 강구 항에 앵글을 고정했다. 선착장에 즐비한 장막 안에서 열린 사각창문을 축으로 프레임에 잡힌 강구항의 풍광을 담았다. 예술가는 평범의 시선을 넘어선다. 사진가의 눈에는 모든 것이 특별함이 된다. <강구>의 표현 기법에서 러시아 절대주의 화가 말레비치의 절대 사각형을 상기시킨다. 말레비치는 화가가 수동적으로 자연 환경에 반응하는 전통적 재현방법을 거부하고 자연 그 자체의 실재와 같이 의미 있는 새로운 실재들을 창조하려 했으며, 회화의 본질로 사각형을 기본으로 하는 기하학적 형태를 택했다. 나호근은 바다가 삶의 터전인 강구 항을 장막 안 열린 사각창문을 통해 이야기한다.

안성용은 대상과 사진과 작가 사이의 상호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진술체계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세 가지 주제에 집중한다. 하나는 산업사회에 대한 반성이다. 둘은 회고와 자신의 정체성, 그리고 예술과 비예술사이의 경계에 주목했다. 셋은 사진은 세상을 읽어내는 도구로 역사의 목격자처럼 우리사회의 증언이고 얼굴임을 기억한다. 안성용이 <송도>에서 보여주는 시선은 송도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보여준다. 사진을 통해 송도를 찾는 관광객과 그곳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사는 사람들의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말하고 있다. 강물처럼 흘러가는 역사의 한 부분을 오늘과 내일, 그리고 미래의 시간으로 숙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최흥태의 <풍경을 향하여> 는 깊고 푸른 바다가 끝없이 넓은 수평선과 높고 낮은 길이 아찔한 낭떠러지로 이어지는 소나무 숲길이 펼쳐진 아름다운 ‘블루로드’를 이야기한다. 지금은 멈추어버린 군화소리가 아찔한 낭떠러지 바위와 시멘트 길에 상흔처럼 남아있다. 화가의 눈처럼 사진가의 눈은 남다르다. 화가는 붓으로 생각을 그려내지만 사진가는 렌즈로 이념을 담아낸다. 최흥태는 아름다운 풍경 너머 역사가 숨긴 진실의 단면을 들춰내고 있다. 우리가 잊지 말고 기억해야할 분단의 풍경이다. 그 날의 군인들이 밤낮으로 걸었던 그 순간의 눈물이 그의 렌즈에 소환되었다.


▲ 회화성- 김훈, 이정철
백 마디의 말보다는 한 장의 사진에서 더 깊은 인상과 감동을 받는다. 사진전에서 감동을 받거나 제품 광고지에 실린 기발한 사진을 보고 감탄을 급치 못하는 경우까지 사진은 우리 삶의 곳곳에서 그 위력을 발휘한다. ‘사진(寫眞)’의 사전적 의미가 “있는 그대로를 베끼다“라는 뜻이다. 사진은 리얼리즘 사진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리얼리즘 사진의 실체는 자연의 형태미를 추구하는 외형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인간 본연의 내적·정신적 본질을 중시하며, 그들의 삶과 애환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한때 디지털 이미지의 출현과 함께 사진이 단지 이미지를 제작하는 도구나 이미지를 복제하는 하나의 기술로 인식되면서 ‘사진의 죽음’이 예고되었다. 또한 사진이 회화에 종속된 것으로 오인되었다. 그러나 사진의 예술적 추구는 오히려 화가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특히 1차 세계대전 이후 황폐화를 배경으로 문명의 구속으로부터 인간의 자유와 해방과 순수한 정신의 참된 사고와 표현을 강조하며, 외적 현실과 내면적 현실의 변증법적 총합을 시도하는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사진은 더없이 훌륭한 표현 기법을 제공했다. 초현실주의자들의 궁극적 목적은 이전에는 관심을 받지 못했던 인간 삶의 일면을 파헤쳐 새로운 현실을 발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리얼리티의 파악이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사진은 카메라 자체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질, 즉 화학, 물리적인 속성과 기계적 기록성에 의해 창조되는데, 이는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창조적 작품 활동의 새로운 길을 열어 주게 되었다. 1920년대 전후로 회화의 영역에서 사진을 통해 초현실적인 작품이 생산된다. 그렇게 출현한 것이 또한 초현실주의 사진이었다. 초현실주의 사진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를 넘어서 그 이상의 세계를 표현해 낸다. 사진은 표현 영역이 확대됨과 동시에 회화성을 지닌 예술적 가치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정철의 <어머니의 바다>는 다분히 초현실적인 관념성을 지닌다. 그의 사진은 기억으로부터 시작된다. 수많은 기억 속에 어머니는 셀 수 없는 감정과 상처와 눈물로써 장성한 아들 곁을 지켜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기억의 파편들은 엄마의 바다를 형성했다. 그 바다는 이제 작가가 엄마를 떠나보낼 마음의 기도, 마음의 준비를 하는 세상에서 아름다운 이별의 장소가 된다.

김훈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소중히 담아내는 작가이다. <아라의 전설> 은햇볕과 바람에 자신의 수분을 내어주며 건조되어 가는 고통을 감내하고 마른 살집조차도 인간의 먹거리로 내어주며, 남은 껍질은 뒤틀리고 이제는 명태가 먹태가 되어버린 바다의 전설을 노래한다. 김훈은 건조된 바다의 전설에서 감각적이고 회화적인 창의성을 덧붙여 선적인 조형미를 탐구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이 지닌 본질적 의미를 그의 사진 언어로 풀어낸다.


▲ 새로운 길
180년 전 사진의 출현은 화가의 손보다 더 완전한 자연의 재현을 꿈꾸는 욕망의 결실이었고, 그것은 회화의 종말이었다. 사진의 발명을 목격한 프랑스 화가 들라로슈는 “오늘부터 회화는 죽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회화는‘자연 모방’이라는 기술을 넘어 인간의 내적 정신을 그려내는 새로운 미술로, 형식주의 미술에서 개념미술의 시대를 열었다. 야수파는 반아카데미즘을 부르짖고 모방에서 벗어난 임의적이고 변형된 표현을 추구했고, 입체파는 사물의 다양한 본질을 담기 위해 새로운 시각을 추구했으며, 표현주의는 예술의 본질적 의미를 인간의 감정이나 정서를 전달하는 것으로 그 존재가치를 생성시켰다. 사진 또한 완벽한 자연의 복제에 복사의 기능까지 갖추어 오히려 예술 시비의 덫에 스스로 걸렸다. 여기에 디지털의 등장은 더 이상 사진에서 감광물질을 이용한 인화가 필요 없게 하였다. 사진의 종말인가. 그러나 지역에서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는 5인의 작가 김훈, 나호권, 안성용, 이정철, 최흥태를 통해 우리는 사진의 진실성, 사진의 예술성, 존재성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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